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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1회 글나라백일장대회 최우수상(일반_산문)
제 111호 소식지
제목: 바코드를 찍으면                                     선선아

나는 하루에 많은 시간을 바코드를 들고 있다. 그리고 사람들이 들고 오는 물건들에 바코드를 대고 물건값을 확인하고 계산한다. 맞다. 내 직업은 편순이. 누군가는 편의점에서 일하는 여자를 비하하는 말이라 하지만 나는 그 말이 그렇게 나쁘지 않다. 손님들이 들고 오는 도시락이나 삼각김밥 같은 것에 바코드를 찍을 때면 나는 가끔 생각한다. 과연 내 인생에 바코드기를 들이민다면 과연 어떤 값이 나올까?

편의점에서 일한지는 2년이 지났다. 나의 지난 삶은 고단하기만 했다. 22살. 집을 나온 그 시점부터 고단함은 항상 나를 따라왔다. 준비 없이 집을 나온 내게 고시원을 얻을 돈이 전부였다. 집을 나온 첫 날 밤, 창문이 없어 빛조차 들어오지 않는 고시원의 좁은 방이 나와 닮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서글프기만 했다. 인생에서 가장 빛난다는 청춘의 시간이었는데, 나는 온전히 그 청춘을 누리지 못했다. 빛나는 청춘은 남의 일이었다. 몇 가지 아르바이트 생활을 거치다, 결국 몸과 마음이 힘들어져 인천에 있는 정신병원에 입원을 했고 그렇게 서른이 넘은 나이에 어쩌다 편의점에 일을 하게 되었다. 어쩌다보니 편의점. 그렇게 어쩌다 떨어진 편의점에서 나는 바코드를 찍고 있다.

우리는 문자나 숫자를 흑과 백의 막대 기호와 조합한 코드를 바코드라고 부른다. 바코드를 신기해하는 꼬마 손님들에게는 줄줄이 까만 줄 속에 상품정보가 들어 있어서, 이 기계로 상품의 정보를 읽어내는 거라고 설명을 해주곤 했다. 그 설명을 할 때면 내 인생에 바코드를 찍으면 그림자 같은 어둠이 끝없이 쏟아질 거라는 생각을 하곤 했다. 편의점 일을 처음 시작했을 때의 마음이었다. 그러나 어둠뿐이던 내 마음에 빛이 들기 시작한 것은 사소한 계기였다.

편의점에 일을 시작하면서제일 어려웠던 것은 담배 판매였다. 담배를 피지 않았기도 하고 담배종류가 너무 많았다. 그래서 빠르게 자신이 원하는 담배를 찾아 주지 않는 손님들은 짜증도많이 냈고, 손님들의 짜증이 무서워 담배를 사러 오는 손님이 들어오면 덜컥 겁이났다. 지금에서야 웃으며 여유롭게 짜증내는 손님을 상대하겠지만 편의점 일을 시작할 때 내 마음은 어둠으로 가득차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이었다. 담배를 사러 온 손님이었는데, 점잖은 느낌의 노신사였다. 그런데 손님 입에서 나온 담배 이름이 낯설었다. 낯선 담배 이름을 듣자 심장이 두근거리기 시작했다. 점잖은 인상이라 화를 내지는 않을 것 같았지만, 편의점 아르바이트생으로 일을 제대로 하지 못하는 자괴감 때문에 더 힘들게 느껴졌다. 그런데 짜증만 내던 사람들과 달리 이 손님은 여유롭게 나를 지켜봐 주었다. 그러더니 같이 한번 찾아볼까요? 먼저 찾는 사람이 누굴까요? 라고 장난스러운 제안을 해주셨다. 그때였다. 처음 보는 타인에게 따뜻한 빛을 느낀 것은. 별거 아닌 일이었지만 내 마음에 빛이 들기 시작한 날은 어느 손님의 따뜻한 배려. 그날부터 내 인생을 지배했던 어둠이 빛으로 서서히 물들기 시작했다.

마음에 빛이 들어오자 편의점 일이 재밌어지기 시작했다. 편의점에 손님이 오면 저 손님은 무얼 필요로 해서 이곳에 들어왔을까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손님들을 관찰하게 되었다. 보통 급하게 계산대로 오는 손님은 담배손님이다. 그리고 삼각김밥 매대를 두리번두리번 거리는 손님은 분명 입이 궁금한 상태일 것이다. 어떤 손님은 바구니부터 찾는다. 맥주를 가득 담고 육표류를 담기도 한다. 담배는 쿠바나 더블, 음료는 펩시콜라 제로, 과자는 썬칩 이렇게 고른 손님은 내가 좋아하는 단골손님 중 한 분이다. 이렇게 사람들에 대한 관심이 생기면서 내가 다른 사람의 인생에 빛을 나눌 수 있다는 사실도 알게 되었다.

지금 내 인생에 바코드를 찍는다면, 어떤 결과가 나올까 38살 미혼의 여자. 편의점 직원. 가게에서는 밝고 상냥한. 가격. 쉬는 날엔 대부분 집순이로 생활. 가격은 얼마. 이렇게 될까. 누군가 나라는 상품을 사줄 사람이 있을까. 나라는 사람을 인식하고 나에게 값을 내어줄 그런 사람이 있을까라는 생각도 해본다. 중요한 건 뭘까. 나를 필요로 하는 내 가치를 알아줄 사람을 찾는 것이 중요한 걸까. 아니면 내 바코드의 값을 내가 정할 수 있다면 그게 참 좋겠다는 생각을 한다. 내 바코드의 표시 값은 전에는 우울증. 사회생활에 실패한. 욕심 많은. 대인기피였다면. 지금은 38살의 여자. 친절한 편의점 직원. 꿈많 많은. 마음이 단단한 값을 가질 것이다.

하루의 대부분을 바코드를 들고 있지만. 인생으로 보자면 나도 편의점 안으로 들어 온 손님일지도 모른다. 세상이라는 곳에 출입문을 열고 들어와 빈 바구니를 들고 있는. 돈, 명예. 직업. 가족, 친구. 사랑. 취미 등 여러 카테고리의 진열대가 수십 개가 넘는다. 나는 오늘도 내 인생에 무언가를 고른다. 최종 고른 것들을 계산대에 올려놓을 시간이 될 것이다. 삑. 바코드 소리가 울리고 측정되는 내 인생은, 다른 사람의 어둠에 조금이라도 빛이 나누어 주는 사람이기를 바라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