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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1회 글나라백일장대회 최우수상(청소년_산문)
제 109호 소식지
친구의 정의(박소영)

 
  우당탕 거리는 소리와 함께 가야금이 바닥에 던져진다. 잘되지 않는 연주에 화가 난 나머지 나는 짐짝 같아진 가야금을 바닥에 던져버린다. 줄은 끊어져 양 옆으로 휘어져 있는 모습으로 뒤집혀있다. 짙은 나무색을 띠는 가야금은 여전히 반짝인다. 언제부턴가 나에게 하나뿐이었던 가야금은 마음의 무게를 높이고 부담을 늘렸다. 꼴도 보기 싫어질 정도로 변해버린 나와 가야금의 사이는 다시 되돌아 갈 수 없을 정도로 멀어져버렸다. 연주회를 하기 삼일 전인 지금, 나는 이 관계를 연주회 전까지 다시 되돌려 놔야한다. 사랑했던 가야금을 쳤던 나의 손과 뒤집혀진 가야금을 번갈아 본다.

  엄마와 오랜만에 데이트를 하던 날이었다. 그 날은 엄마가 사물놀이 공연을 보러 가자고 한 날이었다. 극장에 들어서고 불이 꺼지더니 시야는 어두워졌다. 곧이어 무대에 조명이 하나 둘 씩 켜지고 악기들이 하나 씩 보이면서 연주가 시작되었다. 흥겨운 사물놀이를 보던 중 끝에서 세 번째 줄에 있던 가야금이 눈에 띄었다. 한 번 눈에 띈 이후로 나는 남은 사물놀이 공연에서 가야금 소리만을 집중하게 되었다. 맑고도 독특한 소리가 내 귀로 들어와 심장을 관통하는 듯 온 몸에 가야금이 울려 퍼졌다. 맑은 갈색의 은은한 빛을 띠는 가야금은 다른 악기들보다도 훨씬 멋져보였다. 내 눈은 사탕을 처음 맛 본 아이처럼 신기함과 설렘이 가득 차있었다. 나는 그 날 엄마를 데리고 악기 상가에 가서 그 무거운 가야금을 조르고 졸라 사서 집으로 가져왔다. 너무나도 무거운 가야금이었지만 그 때의 나에게는 깃털보다도 가벼운 듯했다.

  가야금의 줄을 튕겨보니 공연에서 들었던 그 소리처럼 맑은 음이 나왔다. 내 손으로 이 아름다운 소리를 낼 수 있다는 사실이 나를 흥분시키게 만들었다. 다른 악기들도 만져보았지만 가야금만큼의 흥분과 설렘을 가져다 줄 수 없었다. 가야금만이 유일하게 만졌을 때 심장까지 파고들어오는 전율과 온 몸이 소름이 돋을 만큼 느껴지는 떨림을 주었다. 너는 나의 유일한 친구야. 나는 가야금을 꼭 안은 채 말했었다.

  나는 그 날부터 가야금을 하루도 빠짐없이 치기 시작했다. 혼자 영상을 찾아보며 가야금 연주를 시작했고, 배움이라는 즐거움을 찾을 수 있었다. 엄마와 아빠는 나를 보고 중학교 3학년이 되던 해에 가야금을 전공으로 해보는 것이 어떠냐며 물었고 나는 그 자리에서 좋다고 가야금을 끌어안았다. 과외를 통해 더욱 빨리 성장하는 나와 가야금의 관계는 누구도 막을 수 없었다. 가야금은 내 반 쪽 같았고, 나에게 없어서는 안 되는 보물 1호였다.

  어렸을 때부터 내성적이었던 나는 학교에 가서 친구들과 쉽게 친해지지 못했다. 다가가려해도 떨어지지 않는 입에 친구들과 자연스럽게 멀어지게 되었다. 내가 걱정 되었던 엄마는 나에게 초콜릿 한 봉지를 쥐어주며 친구들과 나눠먹으며 친해지라고 했던 적이 있다. 하지만 나는 그날에도 초콜릿을 꽉 쥐고 친구들에게 전하려 했지만 쉽사리 떨어지지 않는 입에 결국 주지 못 했다. 작은 정사각형의 초콜릿은 내 손에서 점점 녹아가고 끝이 났다. 그래서 나는 자연스럽게 혼자가 되었고 늘 친구에 대한 열망이 있었다. 그런 나에게, 가야금이 찾아온 것이다.

  가야금과 있을 때면 내 얼굴에는 놀이터에서 술래잡기를 하는 아이들처럼 늘 미소가 지어져있었다. 하지만 지금 나의 눈에는 생기 없는 눈빛과 무표정만이 존재한다. 손가락을 보면 가야금을 치느라 모든 손가락에 굳은살이 박혀있다. 딱딱한 손가락과 널브러진 가야금을 번갈아 쳐다보니 내가 처음 가야금과 사랑에 빠진 그 순간들이 떠오른다. 다른 악기들은 눈에 보이지도 않은 채 가야금만을 바라보며 끝이 났던 사물놀이 공연, 그 누가 시키지 않아도 가야금을 향한 애정으로 가득 찬 채 매일을 시간 가는 줄 모르게 쳤던 내 모습. 이와 상반되는 지금의 내 태도와 얼굴은 초라하게 뒤집혀 있는 가야금에게 반성하게 된다. 나는 가야금을 들어 근처에 있는 수리 센터로 달려간다. 수리 센터 아저씨는 나에게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이냐며 다친 가야금의 상태를 말해주었다. 줄이 끊어진 것만 보였지만 뒤판을 지지하는 부속나무는 떨어지고 좌단 문양의 이는 빠져있었다. 아저씨는 금방 수리를 해주신다 하셨다. 수리 되고 있는 가야금의 모습을 볼수록 마음이 아팠다. 내가 가장 사랑하는 가야금을 내 손으로 이 지경까지 만든 것이 미안하고 절망스러웠다. 시간이 흐르고 아저씨는 다 됐다며 나에게 수리 된 가야금을 돌려주었다. 매끈하고 빛이 나는 모습으로 돌아온 가야금을 꼭 안아들었다. 처음 가야금과 친구가 된 날처럼.

  연주회의 날이 밝아 오고 침대 옆에 둔 가야금을 들어 극장으로 향한다. 다른 참가자들은 긴장이 된 얼굴로 무대를 준비한다. 나는 평온한 얼굴로 가야금을 쓰다듬는다. 매끈한 나무가 느껴진다. 내 차례가 다가오고 가야금을 꼭 쥔 채 무대 위로 올라간다. 사람들의 박수가 울려 퍼지고 차분히 앉아 줄 위에 손을 올려놓는다. 열 손가락으로 하나하나 느껴지는 줄들이 내 심장을 관통한다. 줄이 맞닿는 순간마다 가야금과 통하고 있는 듯하다. 무대 위에서 나와 가야금은 그 누구보다도 잘 맞고 서로에게 의지하고 있다. 가야금과 나의 관계가 돌아왔다.

  나에게 있어 친구란 정의는 남과는 조금 다르다. 남들에 비해 많이 특별하다. 하지만 다른 아이들이 학교에서 단짝과 일거수일투족을 공유하고 같이 있을 때 꺄르르 웃게 되는 모습은 나와 가야금이 같이 있을 때와 별반 다를 바 없다. 나는 오늘도 내 하나뿐인 단짝과 소통하며 웃음을 짓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