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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7회 글나라편지쓰기대회 최우수상_고등부
제 60호 소식지

제7회 글나라편지쓰기대회 최우수상_고등부 전소은

 

보고싶은 엄마께

 

엄마가 계시지 않아 홀로 남아있는 집에서 편지를 써요.

아마 이번이 거의 처음으로 엄마와 오래 떨어져 있는 시간인 것 같지요. 엄마께서는 아는 사람 없는 그곳에서 잘 지내시나요? 저는 엄마가 곁에 없으니 쓸쓸해요.

 

전에 제가 혼자 일본 여행을 갔을 때, 엄마께서 보내주셨던 장문의 문자가 기억이 나요. 밤마다 노트북을 두드리던 딸의 타자 소리와, 깔깔거리며 들려오는 딸의 웃음소리가 들리지 않아 괜스레 마음 한쪽이 쓸쓸하다는 얘기요. 비행기의 출발을 기다리며 공항의 드높은 천장 밑에 앉아 그 문자를 읽었을 땐 딸이 없는 첫날이라 어색하신가 보다, 하며 웃어넘겼죠.

 

엄마가 연수를 가신지는 오늘로 정확히 구 일째지만 저도 같은 생각을 하고 있어요.

같이 밥 먹을 사람이 없어서 꺼내 드는 밥그릇이 하나인 것도 어색하고, 언제나 수북이 쌓여 있던 빨래에 제 옷가지밖에 없는 것이 이상하고, 잠을 자고 일어나서 안녕히 주무셨어요, 한마디를 했을 때 돌아오는 답변이 없는 것이 참으로 적적해요. 편지를 쓰는 지금도 혼자라 괜히 집이 더 추운 것 같아요.

 

엄마는 그 누구보다 저를 잘 아는 분이시니까 제가 이렇게 쓸쓸해 할 것도 알고 계셨겠죠. 공부를 위해 연수를 간다고 천천히 말씀하시던 목소리가 아직도 귀에 선해요. 딸을 이 주씩이나 혼자 두고 공부를 하러 가도 되는지 오래 고민하셨다고 하셨죠. 전 그 얘길 들었을 때 기뻤어요. 엄마께선 언제나 저를 최우선으로 하시고 막상 엄마께서 원하던 것들을 포기하셨잖아요. 이번 선택이 저를 낳고 키우시는 동안 처음으로 엄마 자신을 위한 것이었다고 생각해요. 이제까지 절 위해 모든 것을 단념하셨던 지난날들이, 또 당신의 길을 향해 걸어가시는 그 모습이 존경스러워요.

엄마가 엄마 자신을 마주했듯이, 저 또한 저를 마주 하고 싶어요.

 

그 끝에서 전 막연히 싫고 부담스러워 미뤄왔던 사실을 확실히 해야 할 때가 된 것 같다는 생각을 했어요. 평생 엄마랑 같이 살 거라는 애교만을 늘 부렸지만 알고 있어요. 저는 아마 내년이면 기숙학원에 들어가 공부를 하고, 그 뒤엔 대학에 진학하고, 시간이 지나면 직장에 다니며 완전히 집을 떠나게 되겠죠.

 

문득 엄마께서 가장 좋아하시던 책인 <데미안>의 한 구절이 떠올랐어요. “새는 알을 깨고 나오기 위해 싸운다. 알은 세계다, 태어나려는 자는 하나의 세계를 파괴하지 않으면 안 된다.” 막연하게만 느껴졌던 이 말이 드디어 가까워진 것 같아요. 그리고 이 구절을 제게 알려주셨던 엄마의 마음도 미약하게나마 깨달았고요.

 

엄마, 전 이제 모친의 품에서 떠나 자신의 둥지를 만드는 자식이 어떤 존재인지 알 것만 같아요.

그리고 스스로가, 하나의 세계를 파괴해 어머니의 알에서 깨어나, 이제까지 당신께 품어져 또 하나의 세계를 구축했었고, 성년이라는 분기점으로써 지난 일상에서 벗어나 다시금 태어나야 하는, 작은 아기새라는 사실을 받아들일 준비가 되었다고 생각해요.

 

사실 저는 무서워요. 제가 둥지에서 벗어나야 하는, 새와 같은 존재라는 것을 받아들이는 것과 별개로, 괜히 날았다가 아무것도 없는 허공에서 떨어져 부서질까 불안해하고 있어요. 제가 잘 해낼 수 있을까, 하고 덜컥 겁이 나요. 한 번도 해본 적 없는 일을 하는 것이 두려워요. 남들도 다 걸어가는 길이지만 막상 제가 그 길을 걸어야 하니 다리가 후들거리는 것 같아요.

그럼에도 마음속 어딘가에 작은 용기가 있어요. 엄마가 지켜봐 주신다면, 아니, 지켜봐 주신다 생각했을 때 빛나는, 굳센 마음이에요. 엄마께선 제게 정말 욕심 없는 아이라고 하셨었죠, 무엇 하나 해 달라는 말없이 묵묵히 제 할 일만을 한다고요. 아마 그건 이 부탁을 드리고 싶어서였나 봐요. 엄마, 절 지켜봐 주세요. 타인의 도움 없이 처음 펼치는, 저만의 날개를 봐주세요.

 

제가 엄마와의 세계에서 벗어나면 누군가, 아마 엄마께서 가장 슬프고 쓸쓸하실 거예요. 누군갈 떠나보내고 홀로 남은 사람이니까요. 하지만 누군가를 떠나보내는 것이 맹목적으로 비애와 불행만을 낳는다곤 생각하지 않아요. 엄마는 언제나 개척자셨으니 파괴의 의의에서 무언갈 찾으시겠지요. 엄마를 닮은 제가 그 속에서 존경을 찾았듯이요.

 

엄마가 계셨기에 이제까지의 힘든 나날들을 무사히 걸어올 수 있었어요. 끝없는 사랑으로 저를 품어주셨었죠. 이젠 그 넓은 품에서 벗어나 새로운 세상을 마주하는 준비를 하려 해요.

서툴고 표현할 줄 모르는 딸이라 이 말 한마디를 늦게 드리네요. 엄마께서 주신 무한한 사랑을 최대한 갚고 싶어요. 진심으로 감사하고, 사랑합니다.

 

2018년 4월 30일, 엄마가 없는 집에서

딸 전소은 올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