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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요하고 어두운 새벽 4시의 기숙사 학습실에서, 어머니께
제 14호 소식지

<3회 편지쓰기대회>

 

고등부 최우수상

안선미

 

고요하고 어두운 새벽 4시의 기숙사 학습실에서, 어머니께

항상 이럴 때만 어머니라고 부르는 것 같네요. 하하. 좀 어색한데... 역시 그냥 엄마라고 할 걸 그랬나 봅니다. 어머니. 비록 어머니가 원하시던 노란색 편지지에 예쁜 손 글씨로 써 보내는 그런 편지는 아니지만, 정말 오랜만에 이렇게 편지를 써봐요.

안녕하시죠? 건강하시고. 그놈의 공부가 뭐라고 이렇게 기숙사에 들어와 있으니 일주일에 이틀을 겨우 볼까말까 하네요. 친구들은 부모님의 간섭이 없어서 좋겠대요. 저도 처음엔 좋았어요. 편하고, 아무도 간섭을 안 하니까요. 그런데 시간이 지나니 그것도 한순간이더라고요. 정말 소중한 건 없어져 봐야 안다. 그 중요한 걸 왜 이제야 깨달았는지...

요즘엔 부쩍 가족생각이 늘었어요. 빨리 주말이 왔으면 좋겠네요. 보고 싶습니다. . 하지만 딱히 기숙사가 싫다거나 후회하는 건 아니에요. 잘 지내고 있습니다. 무엇보다, 공부하는 시간이 몰라보게 늘었어요. 제가 하면서도 믿겨지지가 않을 만큼 말이에요. 정말, 정말 열심히 하는데, 사실 이렇게 공부를 하면서도 다른 애들에 비해 뒤처지는 것 같아 많이 불안하고, 또 두렵습니다. 아버지 어머니께 걱정 끼쳐 드리면 안 된다는 거 아는데, 맏이로서, 든든한 버팀목이 되어 드려야 한다는 거, 다 아는데, 가슴 한켠에 남아 있는 이 불안을 떨쳐 낼 수가 없어 보고 싶은 어머니께 이렇게 편지로라도 어리광을 부려 봅니다.

사실 저보다 동생들을 더 신경 쓰는 어머니가 많이 미웠습니다.

나도 이제 고1인데, 솔직히 동생들보다 나를 더 챙겨야 하는 거 아닌가?’

친구들 어머님은 이래저래 입시제도 같은 것도 알아보고 학원도 보내 주고 집에서 공부할 수 있게 TV볼륨도 줄여 준다는데...’

어린 동생들이 있으니 그리 쉬운 바람이 아니라는 건 알고 있었지만, 조용은커녕 TV소리가 끊길 날이 없어 그렇지 않아도 힘든 공부가 더 하기 어려워져 비록 말은 못했지만 속으로 어머니를 원망하기도 여러 번이었습니다. 그러다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어머니께 나는, 과연 좋은 딸일까. 저는... 차마 제가 어머니께 도움이 되는 딸이라고 말 못하겠습니다. 그저, 그저 죄송하다는 말밖에는 나오지 않아요. 저번 주 일요일. 기억하시나요? 제가 기숙사로 돌아가기 위해 막 출발할 때요. 해가진 탓에 날씨가 꽤 추웠습니다. 집에 있는 옷들 중에 가장 따뜻하다는 말을 하시며 옷장 구석에 걸려있는 제 패딩을 꺼내 입을 때, 두 가지 생각이 들었습니다. 하나는 잘 입지도 않을 걸 왜 그렇게 비싼 돈을 들여 샀지. 아깝다.’ 였고, 또 하나는 내 패딩이 어머니께 이렇게나 컸었나.’ 아니, ‘보통 사이즈인 내 패딩이 커 보일 정도로. 우리 어머니가 이렇게 작으셨나.’ 였습니다. 언제부터 이렇게 작으셨던 걸까... 언제부터 이 작은 몸으로 우리 가족을 팔이 끊어져라 안아 오셨던 걸까...

생각하니, 코끝이 찡해지며 울컥 눈물이 나려해 억지로 눌러 참고 버스에 올랐지만 채 두 정거장이 지나기도 전에 결국 울어버리고 말았습니다. 그런데 그리 먼 거리도 아니건만, 소매로 연신 눈물을 닦아내는 저를 아무도 신경 쓰지 않았습니다. 그저 노래를 듣거나 게임을 했죠. 저는 그것이 힘들어하는 어머니께 말 한번 건네지 않은 저의 모습 같아 너무도 슬펐습니다. 아마 버스안의 사람들은 제가 울고 있다는 걸 알아챘을 겁니다. 다만 무시했을 뿐이죠. 귀찮고, 조금 창피하고, 자기랑 딱히 상관이 있는 것도 아니니까. 저는 구석에서 몰래 눈물을 훔치는 어머니를 몇 번씩이나 보았지만, 귀찮고. 조금 창피하고. 나랑 딱히 상관이 있는 것도 아니니까. 무시하고 말았습니다. 만약 그 버스에 어머니가 계셨더라면, 바로 저에게 말을 걸어 주셨겠죠? 왜 그러냐고, 무슨 고민 있냐고. 괜찮다고. 저를 다독여주셨겠죠? 그런데 저는, 저는 그러지 못했습니다.

어머니. 저는 저 때문에 힘들어하시는 어머니께 그저 죄송하다는 말밖에 하지 못하는 못난 딸이고, 아직 어머니가 살아오신 인생의 절반도 채 경험하지 못한 어린 딸이고, 신문과 뉴스보다 만화와 애니메이션이 더 좋은 미숙한 딸입니다. ‘자식사랑이라는 말, 그게 어떤 것인지 잘 알지도 못하고 딱히 실감도 안되지만,

제 주위, 그 누구보다도 자식을 사랑하는 두 분을 알고 있습니다. 어머니, 저를 이 땅에 태어나게 해주신 감사하고 또 감사한 어머니. 사랑합니다.

-밝아오는 아침 6시의 기숙사 학습실에서, 선미올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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