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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실, 당신 앞에 마주하다/몬스터 콜스_제10회 독서감상문대회 일반부 우수상
제 104호 소식지

나는 작정을 하고 있었다누구의 방해도 받고 싶지 않았다그래서 아무런 약속도 없던 토요일을 골랐다

남편에게 중학생인 아들과 딸을 맡기고 마치 중요한 약속이 있는 것처럼 잘 차려입은 뒤 집을 나섰다

자기도 좀 쉬고 싶다는 표정의 남편과 엄마 없이 아빠와 어떻게 지내냐고 의아해하던 아이들의 시선을 

가볍게 무시하고 현관문을 닫았다너무 단호한 나의 행동에 그들도 나를 잡지는 못했다작전은 성공이었다

집에서 조금 떨어진 삼청동으로 가는 발길은 무척 가벼웠다

전에 봐두었던 통창이 커서 햇살이 잘 들어 오는 조그마한 카페로 들어갔다

조금 이른 시간이라 내가 봐둔 자리는 비어있었다최대한 친절하고 밝은 미소로 아메리카노 한 잔을 주문했다

나 이제부터 자리로 가서 조용히 책을 읽을 테니 절대 방해하지 마세요.’라는 의미의 미소였다

그리고 자리로 돌아와 책을 폈다이제 아무도 나를 방해하지 못할 것이다지금부터의 시간은 오롯이 나만의 것이다

나는 이 순간만큼은 문학소녀다나는 이제 코너가 되어 몬스터를 불러낼 것이다

그리고 아픈 내 과거도 끄집어내어 코너와 함께 어떻게든 결말을 내고자 한다

난 그렇게 <몬스터 콜스>를 읽기 시작했다.

 

단숨에 책을 읽었다몬스터는 나에게 쉴 틈을 내어주지 않았다

책갈피는 사용하지도 못한 채 덩그러니 구석에 놓여있었고마지막으로 입에 댄 것이 언제인지도 모를 커피는 

얼음이 모두 녹아 밍밍해진 상태로 방치된 채 자기만의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난 커피 대신 물을 한 잔 마셨다

그리고 내 기억의 저장창고에서 이제는 어디에 뒀는지 알 수도 없을 만큼 오래전에 숨겨 두었던 할머니에 대한 

기억을 끄집어냈다누군가는 그러더라인간은 누구나 마음속에 악마가 도사리고 있다고

하지만 그것을 제어하는 힘도 인간만이 가지고 있다고

우리는 그것을 인간의 양면성’ 혹은 인간의 이중성이라 부른다

인간은 선과 악이 결합 된 존재라고 보는 시각도 같은 맥락으로 볼 수 있겠다

몬스터는 코너에게 세 가지 이야기를 들려준다

좋은 마녀이면서 나쁜 마녀일 수 있는 여왕과 살인자이자 구원자일 수 있는 왕손의 이야기

성질이 고약하면서도 생각은 바를 수 있는 약제사와 생각이 잘못되었으면서 선할 수 있는 목사의 이야기

보이지 않는 사람이 보이게 되었을 때 더 외로워질 수 있는가에 대한 이야기까지

모두 하나의 몸에 두 가지 가 존재하는바로 인간의 양면성에 관한 문제들이었다

몬스터는 관심조차 없는 코너에게 집요하게 인간에게 두 가지 인격이 동시에 존재할 수 있는지에 대한 질문을 

던진다나 또한 몬스터의 세 가지 이야기와 질문을 정면으로 받았다

인간이 필연적으로 양면성을 가지고 있다면그래서 그 양립되는 두 인격이 실제로 존재한다면

난 하이드가 되고 싶지는 않다나는 언제나 지킬박사이고 싶다

두 가지 본능을 분리하더라도 충분히 제어가 가능한 인간이 되고 싶다그러려고 필사적으로 노력하며 살아왔다

문제는 몬스터가 말한 네 번째 이야기다코너는 네 번째 이야기가 피하고 싶을 만큼 두려웠을 것이다

그것은 어머니의 죽음과 연관되어 있으므로.

 

코너는 진실 앞에 마주 서 있었고 몬스터는 그런 코너를 다그쳤다네 번째 이야기는 코너의 악몽에서 시작한다

악몽 속에서 코너는 엄마 손을 놓았다

그게 놓았는지아니면 놓쳤는지 알 수는 없지만몬스터와 코너는 어떤 것이 진실이었는지를 두고 서로 대립한다

몬스터는 진실을 말하라고 코너를 윽박지른다진실을 말하지 않으면 악몽에서 벗어날 수 없다

평생 고통 속에 갇혀 살아야 한다코너는 이제 진실을 말해야 한다악몽에서 벗어날 길은 진실을 말하는 수밖에 없다.

더 이상 견딜 수가 없었어엄마가 죽을 거라는 걸 알고도 견딜 수가 없었어그저 끝나길 바랐어다 끝나길 바랐다고.”

엄마의 병실에서 코너는 마음속 진실을 말했다

엄마가 떠나길 바랐고 동시에 엄마를 간절히 구하고 싶었던 마음을 털어놓았다

앞서 얘기했던 공존할 수 없을 것만 같은 인간의 양면성에 관한 문제였다코너 안에 있던 악마와 거래를 한 것이다

거짓말을 하지 않을 수 없게 만드는 고통스러운 진실을 알면서도 마음을 달래 주는 거짓말을 믿은 것이다.


사랑하는 사람의 죽음은 언제나 우리를 슬프게 한다하지만 그 죽음에 가혹한 진실이 때로 숨겨져 있다

사랑하는 사람을 보내기 싫은 마음과이제 그만 떠나주기를 원하는 비정함이 서로 교차한다

선과 악이 극명하게 나타난다작가는 이 두 가지 극단적인 인간의 심리상태를 보여주고 싶었을 것이다

도저히 공존할 수 없을 것만 같은 이 두 가지 심리는 버젓이 나타나 우리를 비웃는다그리고 선택을 강요한다

진실을 말해야 한다고 다그치지만그 진실은 언제든 우리를 기만하고 보란 듯이 배신한다

사랑하는 사람을 떠나보내야 했던 사람은 누구나 느낄 수 있을 것이다나도 그렇게 할머니를 보냈다.

 

 “김천 할머니당분간 우리 집에 오셔서 살 거야.”

엄마가 어두운 얼굴로 말씀하셨다내가 가장 좋아하고 나를 가장 사랑하시는 할머니였지만그건 불행의 시작이었다

할머니는 암에 걸리셨다이어지는 엄마의 병원살이와 눈물그리고 한숨들

할머니는 병원을 포기하고 집으로 오셨다그 뒤우리 집은 할머니의 신음소리와 헛구역질 소리로 가득했다

난 그 소리가 무섭고 싫어서 그때마다 귀를 막고 머리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그리고 그마저도 힘들 땐 이불을 뒤집어썼다그때 나는 또 다른 코너였다.

할머니가 김천으로 가셨으면 좋겠다엄마의 울음이 멈췄으면 좋겠다

할머니가 모두를 힘들게 하지 말고 이제 돌아가셨으면 좋겠다.”

그렇게 사랑했던 할머니를 나는 그만 보내고 싶었다아니보내기 싫었다

아니뭐가 뭔지 모를 정도로 혼란스러웠다내 마음이 어떤 것인지내 속의 진실은 무엇인지나조차도 알 수 없었다

할머니는 한 달도 채 못가 돌아가셨다장례식장에 검은 옷을 입은 사람들이 모두 악마처럼 보였다무섭고 두려웠다

그때 내 나이 겨우 열한 살이었다그 어린 것이 뭘 알았겠냐며 스스로에게 면죄부를 줬다

그렇게 잊음으로써기억이 찾지 못할 곳으로 마음대로 던져놓는 것으로 내 안의 또 다른 나를 숨기며 살았다.

 

논어에 <한 사람에게서 완비함을 구하지 말라>는 구절이 있다

한사람의 인간에게서 완전한 상태를 기대해서는 안된다는 뜻으로 인간의 불완전성인간의 양면성을 두고 한 말이다

인간은 불완전하며 선과 악이 공존함을 나는 어려서 지켜보았다그래서 최대한 노력하며 살았다

할머니의 죽음 이후 내 안의 이 두 번 다시 나오지 않도록 늘 조심하며 살아왔다그것만은 자신있게 말할 수 있다

나는 이름은 밝힐 순 없지만 어떤 보육원에서 봉사활동을 시작했다

부모에게서 버림받은 아이들이 장차 바람직한 사회인으로 성장하기까지 행복하고 안전하게 돌보는 보육시설이다

이유가 어떻든 간에그게 제아무리 피치 못할 사정일지라도그곳은 세상에서 가장 불쌍한 아이들이 있는 곳이다

어미에게 버림받은 아이들그것만으로도 난 그들이 제일 가엾다

하지만 난 그런 가여운 아이들을 만나는 게 즐거웠다세상 어디에도 없을 불쌍한 아이들을 돌보는 게 마냥 행복했다

그렇게 내 마음이 정화되는 느낌에 힘든 줄도 몰랐다하루하루 열심히 아이들을 돌보며 살아간다

힘이 들수록 마음이 편해짐을 느낀다

불쌍한 천사들이 내 가슴에 가득 찼을 때내 가슴에 얼룩이 가리어지길 바라면서…….

 

 카페 문을 나섰다들어올 때와는 다른 홀가분해짐을 느낀다

이제 나는 마음의 빚을 갚고 새로운 마음의 저축을 시작할 것이다

인간에게 양면성이 존재한다면그래서 필연적으로 갈등과 반목그리고 불화가 찾아온다면

나는 슬기롭게 대처해 나갈 것이다흔들림 없이 나를 바로 잡아주고 항상 내 안의 을 추구할 것이다.

나는 이제 나를 위해 전화나 문자 한번 하지 않고 오롯이 내 시간을 허락해준 고마운 가족의 품으로 돌아간다

오늘은 집안 전체를 가족들의 웃음으로 가득 채우고 싶다

그렇게 나에겐 일생에서 가장 의미 있던 하루가 저물어가고 있었다

이제나도 그리고 코너도 두 번 다시 몬스터를 부를 일은 없을 것이다

그렇게 <몬스터 콜스>에 마지막 작별을 고하며 끝을 맺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