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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0회 글나라 독서감상문대회 일반부 우수상_우리가 빛의 속도로 갈 수 없다면
제 103호 소식지
우리의 삶을 지탱하는 것에 대하여- 우리가 빛의 속도로 갈 수 없다면

엄마가 걷기 운동을 시작 하신다며 만보기를 사고 싶다고 하셨다. 요즘 핸드폰으로 만보기 어플을 다운 받을 수 있다고
알려 드렸지만, 엄마는 핸드폰보다 만보기가 익숙하 다며 만보기를 사고 싶다고 하셨다. 

그래서 만보기를 사려고 동네를 돌아다니는데 아무래도 요즘 찾는 사람들이 없어서 그런지 구하기가 쉽지 않았다. 
그래도 대형마트에 가면 있지 않을까 싶어서 찾아 갔지만 그곳에도 만보기는 없었다. 결국 인터넷으로 주문을 했지만, 
어쩐지 마음 한구석이 씁쓸해졌다. 

디지털 기기들에 밀려 사라지는 아날로그식 물건들이 몇 가지 떠올랐기 때문이었다. 라디오 주파수를 맞출 때 나는 
지지직 거리는 잡음 소리와, 거실 한가운데 자리고 있었던 뻐꾸기시계 같은 것들. 이제는 편리하지 않다는 이유로 
사라졌지만 누군가의 따뜻한 기억이 묻어있는 사라져 가는 물건들에 떠올리고 있을 무렵 김초엽 작가의 ‘우리가 빛의 
속도로 갈 수 없다면’ 을 읽게 되었다.

‘우리가 빛의 속도로 갈수 없다면’ 에 수록된 단편들의 배경들은 모두 미래였다. 책 속에서 그려지는 세상에서는 인간의
배아를 개조를 할 수 있었고, 우주 탐사를 떠나고, 또 도서관에서 죽은 자의 데이터를 찾아 대화를 나눌 수도 있었다. 
작가의 상상력에 감탄을 하는 순간이었다. 앞으로 내가 살아갈 세상에 변화 된 모습을 어렴풋이 만난 느낌이었다. 

어릴 적에 개인마다 하나씩 핸드폰을 들고 다니는 세상이 올 거라는 말을 듣고, 정말 그런 일이 일어날까 하며 머리를 
갸웃 거렸던 기억이 있었는데, 지금 우리는 현대인의 필수품하면 핸드폰을 가장 먼저 떠올릴 정도로 보급이 되었다. 
이것만 봐도 ‘우리가 빛의 속도로 갈 수 없다면’이 보여주는 세상이 영 허무맹랑한 상상만이 아닌 것이 분명했다.

그런데 편리함과 첨단 장비로 무장된 세상이 마냥 반갑게만 느껴지지 않았다. 아니 오히려 무서운 기분이 들었는데, 
그것은 나뿐만 아니라 소설 속에 등장하는 인물들도 나와 비슷한 감정을 느끼고 있었다. 그렇게 과학이 발달해 편리한 
세상을 살면서도, ‘우리가 빛의 속도로 갈 수 없다면’ 속 주인공들은 어떻게 하면 더 이성적이고 편리한 세상에 살 수 
있을까에 대해서 고민하기 보다는, 어떻게 보면 비효율적인 감정과 인간성에 대해 고민을 한다. ‘스팩트럼’ 속 희선은 
외계 생명체인 루이의 마음을 이해하기 위해서 지구에 와서도 그의 언어를 분석하기 위해 유리를 모은다. 그리고 루이가 
살았던 행성을 지켜 주기 위해 허언증 누명을 쓰면서도 끝내 입을 닫는 쪽을 선택한다. 또한 이에 한 발 더 나아가, 
‘공생가설’ 속에서는 류드밀라라에서 온 외계 생명체와 인간과 감정을 교류하는 장면이 나온다. 외계 생명체가 어린
인간들과 공유하는 감정은 인간성과 이타성과 같은 감정들이었다. 생각해보면 과학적인 것과는 거리가 먼 감정들이었다.

내가 특히 마음이 갔던 이야기는 이 소설의 표제작이 기도 한 ‘우리가 빛의 속도로 갈 수 없다면’의 170세노인 안나의 
이야기였다. 그녀는 효율성을 추구하는 미래 세계의 정책에 최대 피해자였다. 그녀는 과학자였고 연구를 하느라, 
가족들이 살고 있는 제 3 행성인, 슬렌포니아로 떠나는 마지막 우주선에 탑승하지 못한다. 기존의 연구 방법보다 더 
효율적인 웜홀 통로의 존재가 밝혀지자 효율성이 떨어지는 슬렌포니아로 떠나는 우주선이 없어진 것이었다. 그러나 
그녀는 긴 잠을 자는 딥프리징 기술로 생명을 연장하며 100년의 시간을 기다리다, 결국 실패할 것이 분명한 마지막 
항해를 떠나기로 한다.

비효율적이고, 사용하는 것이 불편하다고 그 가치가 떨어진다고 말 할 수 없다. 핸드폰 속 어플이 걸음 수 뿐만 아니라 
칼로리와 운동량까지 체크해 주는 시대가 왔지만 엄마의 허리춤에 매달려 자기만의 속도로 묵묵히 걸음수를 체크하고 
있는 이제는 사라져 가고 있는 만보기 존재처럼 무의미한 것은 없다. 아무리 디지털 기계가 발달했어도, 아날로그가 
만들어준 기억과 추억들이, 그리고 여전히 제 몫의 일을 성실하게 하고 있는 것들에 대해 존중을 해주어야 한다.

어쩌면 작가는 최첨단 기기들로 무장한 세상 속에서 정작 우리의 삶을 지탱해주는 것들에 대하여 이야기 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디지털로 포장 된 아날로그 감성을 선물 받은 기분. 아무리 완벽함으로 무장된 유토피아 세계가 우리에게 
주어진다고 하더라도, 인간은 한 사람을 사랑하는 마음, 자아실현, 불가능하고 불확실 것을 상상하고 꿈꾸며 실현해야 
하는 세상을 향해 떠날 것이다. 힘들고 괴로울 것이 분명하지만, 그런 것들이 우리의 삶을 지탱해 주고 아름답게 만들어 
준다는 것을 잘 알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이런 이유로 나는 최첨단 과학 기술보다, 인간의 마음에 내 미래를 걸어 보고 싶다. 그 마음이 편리하지는 않지만 
좋은 세상을 우리에게 보여줄 거라는 것을 믿기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