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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0회 글나라 독서감상문대회 일반부 우수상 _ 딸에 대하여
제 102호 소식지
나는 소설을 읽고 있다. 그들은 나와 다르다. 책에 몰입하다가도 내 일은 결코 될 수 없기에 안도한다. 언제든지 책장을 덮고 일상의 
밝은 햇빛을 받으며 그들의 그림자를 떨쳐낼 수 있다. 그렇게 책의 표지가 단단하고 불투명한 벽이 된다. 하지만 책을 읽는 내내 
그들의 지점에 서 있는 나를 발견한다. 벽은 거울이 된다. 나의 얼굴에 딸이, 어머니가 그리고 그 애가 혼재되어 있다.

<딸에 대하여>라는 제목에서 비켜서려고 애썼다. 나에게는 딸이 없으니까 이런 고민을 하지는 않을 것이다. 나는 누군가의 딸이지만
동성연애를 하지 않으니 이런 고민을 만들어내지 않을 것이다. 배타적인 독자였던 나는 거리를 두고 책장을 넘긴다. 하지만 그들이 
내 안으로 스며들고 있다. 딸을 이해하려고 애쓰는 진정한 혹은 처절한 시도 앞에서 내가 지금까지 누군가를 ‘이해’한다는 말이 
‘오해’와 다르지 않음을 깨닫는다.

이 소설의 화자인 엄마는 병원의 요양보호사로 일하며 고단한 삶의 단면을 보여주고 있다. 그러나 그녀의 집에 딸과 딸의 동성연인이
함께 살면서 갈등은 깊어진다. 어쩌면 그녀도 나와 같이 ‘그들과 다르다고 그어버린 선’을 확신하며 살아왔는지도 모른다. 그런데 
자신이 가장 소중하게 생각하는 딸이 선 너머에 있다. 다시 선 안으로 돌아올 거라는 예감은 희미해지고 딸의 동성연인인 그 애의 
존재로 절망한다.

이 책을 읽기 전까지 ‘이해한다’는 말의 무게를 알지 못했다. 수박 겉핥기식의 피상적인 해답들을 모아놓고 상대방을 쉽게 이해하는 
척했다. 나는 성적 소수자로서 차별받는 사람들을 이해할 수 있다. 나는 사회적 약자의 입장에서 생각할 수 있다. 나는 무엇이든 
이해할 수 있는 사람으로 스스로를 포장했다. 그럴듯한 논리를 뒷받침함으로써 나는 이해라는 영역에서 어디서나 우위에 서기를 
바랐다. 그것이 진보적이고 세련되게 보일 거라고 생각하면서 무책임한 이해를 남발한 것이다.

이해의 문장들은 그 효용과 무관하게 전달되었다. 그 문장이 그들에게 힘을 주었는지, 아니면 정체를 들켜버려 폐기되었는지 
모르겠지만 말이다. 하지만 그 이후에 내 안에는 여전히 앙금으로 남아 나를 괴롭혔다. 문장들은 앞뒤가 맞지 않았고 어느 쪽이 내 
진심인지 알 수가 없었다. 스스로를 의심하며 후회하기를 반복하자 예상치 못한 우울증이 시작되었다. 문제를 이해하지 않고 
피해가려다가 결국 가장 두려운 벽을 마주한 것이다. 세상과 단절되는 기분이었다. 아무것도 하지 않았고 무언가 해볼 용기가 나지 
않았다.

고개를 숙이고 웅크리는 시간 동안 나는 단 한 번도 소설 속의 엄마처럼 스스로에게 질문을 던지지 못했다. 절박하지 않았기 때문에 
뒤로 했던 질문들이 소설을 읽으며 떠올랐다. 그녀의 질문이 나의 질문과 같지 않겠지만 답을 얻으려는 시도는 그녀로부터 배울 수 
있으리라고 생각했다. 그녀가 쉽게 답을 찾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답을 갈구하는 끝없이 이어지는 질문들과 고군분투의 여정이 
마음속에 새겨진다.

눈앞에서 사라지기만을 바랐던 그 애의 등에 파스를 붙여주고, 딸이 시위하는 곳에서 나도 용기를 내어 말할 수 있을까 고민해본다.
그들을 죽기 전에 이해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고 토로하지만 섣부른 인정보다 진심이 느껴진다. 그리고 그들에게도 잠시간의 평화가 
찾아온다. 엄마와 딸, 그리고 각각 집으로 데려온 환자 젠과 그 애까지 네 사람은 안식의 시간을 함께한다. 엄마와 딸의 삶은 평행선을
그리지만 그들이 함께하는 시간으로 선은 휘어지고 어딘가 희미한 교차점들을 만든다. 그리고 그 애는 한없이 멀어질 것 같았던 
모녀의 시간을 이어준다.

진정한 이해의 과정은 괴롭고 어렵다. 이해가 부족하면 제멋대로 생각하고 슬픔이든 기쁨이든 타인의 것으로 밀어둔다. 이해가 
지나치면 책의 마지막 장을 먼저 훔쳐본 것처럼 떨어버릴 수 없는 예감에 휩싸인다. 소설 속의 엄마는 이해하고자 하는 대상의 자리를
시계추처럼 서성인다. 분노가 차오르지만 서글픔이 몰아쳐오지만 딸에 대하여 질문하는 것을 멈추지 않는다.

그러나 그녀는 질문에서 딸에 대한 대답만을 얻지 않는다. 삶과 죽음에 대한 대답을, 세계에 대한 대답을 짐작하게 된다. 그리고 그 
대답들이 딸에 대한 간절한 질문의 답과 맞닿아 있으리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나는 이 책의 제목이 ‘딸에 대하여’지만 주인공인 
엄마가 보여준 진정성으로 ‘( )에 대하여’라고 빈칸을 만들어놓고 그 안을 채워볼 생각이다. 결국에는 괄호에 ‘나’를 넣어볼 것이다. 
타인을 이해하는 것은 곧 나를 이해하는 것과 다르지 않기 때문이다. 책을 읽는 동안 엄마의 목소리에서, 딸과 그 애의 모습에서 내가
비춰보였다. 내가 지난 시절 놓치고 지나간 질문들이 내 안에서 다시 쌓이며 대답을 찾고 있다. 그 의미 있는 여정의 방향을 알려준
책을 만나게 돼서 진심으로 기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