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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0회 글나라 독서감상문대회 청소년부 최우수상_사랑하기란 얼마나 어려운 일인가
제 101호 소식지
사랑하기란 얼마나 어려운 일인가
                                                                                                               조예은
[연탄길] 독서감상문


  거리가 하얗게 얼어붙으면 하얀 염화칼슘 대신 컴컴한 연탄 가루를 뿌리던 시절이 있었다. 지금은 연탄을 피우는 
집들이 많지 않지만, 할아버지의 옛이야기와 부모님들의 코흘리개 시절 기억 속에 항상 자리하고 있는 물건을 꼽자면 
연탄일 것이다. 가족들의 온기를 위해 새벽에도 언 손을 호호 불어가며 옮기는 구공탄은 사랑의 형상화와도 같다고 
생각한다. 수많은 형태의 사랑이 담긴 이 책의 제목에 생뚱맞게 나타난 연탄이 전혀 어색하지 않은 건 이 때문일 것이다. 
사랑과 연탄은 별반 다르지 않다. 때론 더러워지기도 하고 앞에서 울음을 터트리기도 하지만 한없이 따듯한 존재…. 
연기와 추위 때문에 콜록거리면서도 연탄불을 지피던 이웃들의 따스한 이야기는 연탄처럼 우리의 마음을 뜨듯하게 
데워준다.

  내가 태어나기도 전에 세상에 나온 이 책은 샛노랗게 세월을 먹은 채로 우리 집 책꽂이 한구석에 자리하고 있었다. 
사랑의 앞글자와 같은 학년에 처음 읽었던 책은 내 키가 책장을 뛰어넘게 될 때까지 굳건히 자리를 지켰다. 어렸을 때는 
사랑을 받던 아이들의 시선에서, 청소년 때는 이해할 수 없었던 사랑의 형태에 공감하며, 어른의 초입에 선 지금은 나도 
사랑을 줄 수 있는 어른이 되길 바라며 읽어갔다. IMF의 빈곤과 아직은 부딪혀보지 못한 사회, 모두가 힘겹고 가난했던 
시절을 배경으로 한 이야기임에도 나는 모든 글이 막연하게 느껴지지 않았다. 아마도 모르는 아이들에게 음식을 나눠준 
식당 주인도, 방황하는 아들을 위해 자신의 삶을 희생해 교훈을 주는 아버지도, 비슷한 빈곤 속에서도 군말 없이 돈을 
내어주는 친구의 우정도. 이야기의 시대는 모르지만, 이야기가 시사하는 사랑의 형태는 알고 있을 것이기 때문일 것이다. 
사랑은 시대를 초월한다는 말이 있다. 이야기 또한 시간을 넘어서는 단어다. 샛노란 세월과 그 안의 더 긴 시기는 읽는 
데에 장벽이 되지 않는다.

  덕분에 사랑을 단편적으로만 이해할 나이에도 나는 책을 읽으면서 울 때가 있었다. 나를 울린 수많은 이야기 중 아직도 
연탄길 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이야기는 [사랑은 사람을 포기하지 않는다] 이다. 중풍으로 누운 아버지의 약값을 
부치며 매일같이 공장에서 성실히 일을 한 현수는 사고로 팔을 다치게 된다. 제 열정을 바친 대가로 그가 얻은 것은 
사장의 외면뿐이었다. 술에 취한 그는 쌓였던 울분을 주체치 못하고 순간 눈이 돌아 아빠의 친구라며 놀이터에 있던 
아이를 유괴해간다. 몸값을 요구하려던 그는 아이가 잠시 사라지자 부모님께 연락했냐고 아이를 몰아붙이는데 
어린아이가 들고 온 것은 대일밴드였다. 아저씨 손 다쳤잖아요….. 아무도 건네주지 않은 그 말에 현수는 제정신으로 
돌아와 아이를 바래다준다. 그리고선 본인의 거짓말에 대해 고백한다. 하지만 아이는 세상에 버림받은 줄만 알았던 
현수에게 하나의 온기를 선물해준다. 알아요, 우리 아빤 지금 하늘나라에 있거든요. 모든 걸 알면서도 아이는 따라왔다. 
다친 그를 보듬어주고 싶어서. 현수의 이야기를 읽을 때면 작은 사랑 하나가 사람을 어떻게 바꾸는지를 느끼곤 한다. 
분명 세상에는 수많은 현수들이 있을 것이다. 그들이 낙담하고 그릇된 길을 선택하기 이전에, 삶을 포기하기 이전에 
자그마한 사랑을 베풀어줬다면….

  이런 이야기들을 읽고 있자면 사람들은 눈물을 훔치다가도 한숨을 내쉬곤 한다. 이웃의 얼굴조차 모르는 현대 사회 
속에서 사람들은 더는 인류애를 느끼지 못한다고 말한다. 어쩌면 연탄길이 지금까지 사랑받는 이유도 그 시절을 
그리워하기 때문일 수도 있을 거란 생각이 든다. 하지만 나는 연탄이 사라진 지금도, 사랑은 사라지지 않았다고 생각한다. 
세상에는 수많은 형태의 사랑이 있다. 연인들 간의 불탐 이외에도 새벽에 마주한 아버지의 굽은 등, 우는 내 곁을 묵묵히
지켜주는 친구의 침묵, 응원 쪽지가 붙은 얼굴도 모르는 이가 올려둔 독서실 책상 위의 커피. 생각해보면 사랑은 언제나 
우리의 곁에 숨어있다. 우리가 그 사랑을 당연하게 여기거나 망각해버릴 뿐이지.

  따라서 사랑을 표현하는 건 정말 중요한 일이라고 생각한다. 작중의 대사가 하나 있다. 시간이 많이 남지 않았다. 
우리가 서로 사랑할 시간이. 삶은 짧다. 사랑하기도 바쁠 시간이다. 나는 가장 후회하는 일 중 하나가 이 사실을 너무나도 
늦게 깨달았다는 것이다. 사랑은 완벽하지 않아서 누군가에게 주기도 어렵고 받기도 어렵다. 내가 보낸 사랑의 형태가 
누군가에게는 무자비한 폭력처럼 느껴지곤 한다. 특히 어린 시절에는 사랑을 달콤하기만 한 감정으로 기억하기 때문에 
더욱이나 그렇다. 나는 13살부터 부모님에게 벽을 치기 시작했다. 부모님의 모든 행위가 사랑을 기반으로 나온다는 걸 
이해했지만, 내가 바랬던 사랑의 형태와 부모님이 주신 사랑의 모양은 너무나도 달랐다. 결국 사랑을 거부하기 시작했던 
탓에 나는 지금도 사랑이 어색하다. 나를 사랑하기도 어렵게 느껴지고, 사랑을 받는 것이 무섭게 느껴지곤 한다. 사랑은 
비가 되어 메마른 마음을 적셔주지만 때로는 장마가 되어 부담을 안겨주기도 하고, 뇌우를 동반해 우리를 상처 입힐 때도 
있다. 때로는 결핍을 낳을 때도 있고 악의를 품게 만들기도 한다. 그 때문에 울고 웃는 사람들을 보면 사랑만큼 어려운 
감정은 없는 것 같다. 책의 구절은 이런 우리의 심리를 잘 대변해준다. 사랑한 상처를 주지 않고 사랑하기란 얼마나 
어려운 일인가. 이런 나의 서투름을 부모님은 이해하려고 노력한다. 자주 대화를 나누지는 않지만 늘 버릇처럼 
말해주시곤 한다. 언제나 너의 편이라고. 아마 청춘을 겪어본 사람이라면 알 것이다. 내 편이 되어준다는 그 말이 가끔 
얼마나 고마운지. 소리소문없이 눈처럼 기다려주는 이 애정이 얼마나 따스한지를.

  나는 아직도 사랑이 어렵다. 어릴 적의 상처는 아무는 데에 너무 오랜 시간이 걸리고 무엇보다 두려움을 낳곤 한다. 
그래서 이 글을 읽는 내 또래는, 나보다 어린아이들은 그리고 어른들은 조금 달랐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든다. 사랑을 
거절당하는 것에 두려워하지 않았으면 좋겠고 사랑에 너무 아파하지도 않았으면 좋겠다. 그리고 사랑이 있음에 
감사했으면 좋겠다. 연탄을 피우던 시절은 다시 돌아오지 않겠지만 온기가 주는 따스함을 향유할 수 있는 시간은 아직도 
존재한다. 연탄불 대신 누군가를 기억하기 위해 촛불을 켜는 사람들, 연탄 대신 가장이란 이름을 짊어지고 사는 아버지 
혹은 어머니, 미끄러지지 않기 위해서 뿌리던 연탄 가루처럼 당신이 넘어지지 않도록 함께 손을 맞잡아주는 친구. 아직 
수많은 연탄의 잔재들이 우리 가슴에 남아있다. 그러니 모두가 뜨겁게 사랑했으면 좋겠다. 고된 시기일수록 연탄의 
따스함이 우리는 필요하다. 어렵겠지만, 다들 뜨겁게 사랑을 했으면 좋겠다.

  사랑하기란 얼마나 어려운 일인가.
  하지만 사랑이란 얼마나 아름다운 일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