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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0회 글나라 독서감상문대회 일반부 최우수상_기억과 기록
제 100호 소식지
제목: 기억과 기록,   책 제목: 1984,   저자: 조지 오웰
 
  “어떤 동물도 이유 없이 다른 동물을 죽여서 안 된다” 
이 글은 조지오웰의 저서 “동물 농장”에 나오는 7계명 중 변조된 6계명의 내용이다. 
자신들에게 순종하지 않는 동물들을 잔인하게 처형한 지배 동물들은 원래 글에 ‘이유 없이’ 란 단어를 몰래 삽입함으로서,
그들의 행위가 계명에 위배되지 않음을 억지하고 있다. 기억력에만 의존하는 동물들은 기록이라는 현실 앞에 희미한 
자신의 기억을 부정하고, 체제에 순응하게 된다. 4년 후, 그는 동물 농장 대신 인간 농장이라는 부를 수 있는 한 편의 
소설을 완성하는데, 그 소설 제목이 ‘1984’ 이다.

  주인공인 윈스턴은 진리부 기록국에 근무하고 있으며, 그의 업무는 없애버려야 할 서적과 신문 각종 문서들을 찾아내어
정정하는 일이었다. 그 시대의 모든 역사는 필요에 따라 깨끗이 지우고 다시 고쳐 쓰는 종이위의 글씨와도 같은 것이며, 
어떤 경우에도 거기에 허위가 섞여있다고 주장할 수도, 증명할 수도 없었다. 그는 사형 아니면 적어도 강제노동 25년 형을 
선고 받을 것이 틀림없는 범죄를 저지르게 되는데, 그것은 바로 노트에 일기를 쓰는 일이었다.

  기억(記憶)과 기록(記錄)은 위 두 소설만큼이나 연관성 있는 행위이다. 기억은 사전적 의미로 “과거의 경험을 인간의 정신
속에 간직하고 되살리는 것“ 이며, 기록은 인간의 정신 대신, 종이나 다른 도구에 글이나 기호로 적음으로써 그 기억을 
간직하고 되살리는 행위이다. 조지 오웰은 ‘왜 그토록 기억과 기록에 집착하였을까?’ 하는 궁금증이 생겼다. 그 당시 
영국사회는 민주주의 국가로 소련이나 독일처럼 사상이나 출판의 제약이 크지 않던 사회에서 무엇이 그에게 그런 영향을 
주었는지 유심히 생각하게 되었다.

  윈스턴은 어제를 비롯한 과거가 깡그리 지워지고 있다는 것을 느끼며 괴로워하고 있다. 그에게 남아있는 유일한 증거는 
기억 속에 남아있을 뿐인데, 과연 사람들이 자신의 기억을 믿어주겠냐고 하면서 예전에 자신이 버린 신문지 조각을 보관하지
못했음을 후회하고 있다고 연인인 줄리아에게 말한다. 그런 위험한 행동을 통해서 대체 무엇을 할 수 있느냐는 그녀에게 
”구체적으로 할 수 있는 건 없겠지... 하지만 증거는 돼... 내가 위험을 무릅쓰고 그것을 누구에게든 보일 수만 있었다면, 
당을 의심하는 사람들이 여기저기서 생겨났을 거야. 물론 우리가 평생에 어떤 것을 변화시킬 수 있으리라고는 생각지 않아.
그러나 여기저기서 일어날 소규모의 저항운동은 상상할 수 있어. 만약 그 세력이 점점 불어나서 후세에 몇 마디 기록이라도
남기게 된다면, 우리가 떠난 뒤에라도 다음 세대가 뭔가를 수행할 수 있을 거야.“

  역사적으로 보면, 우리나라도 지금부터 멀지 않았던 시기인 1980년대까지 비슷한 상황들이 존재했다. 올해 40주년 되는 
광주 5.18운동만 보더라도, 일반인들은 그 당시 현실의 진실을 정확히 알기가 힘든 시절이 있었다. 한국에서 발간되는 
출판물은 물론이고, 미국 잡지인 뉴스위크지도 그 당시 신군부에 불리한 내용이면 까만 매직으로 덧칠하여 판매되었고, 
그것을 대학생들이 햇빛에 비추어 보자, 급기야는 그 내용들을 가위로 오려서 나오는 일들이 몇 년 동안 지속되었다. 
그래서 학생들은 정부에서 금지하는 내용을 등사기로 자체 인쇄해서 대학가나 공장들에 몰래 돌리곤 하였는데, 책에 나오는
애정부 101호실보다는 덜하겠지만, 지금의 국정원에 해당되는 안기부 안가에 끌려가서 고문을 당하던 시절이 우리나라에도
존재했었다.

  왜 국가에서 그토록 사람들의 기억과 기록들을 변조하고 없애는지에 대한 구체적인 설명이 책의 3부에 나온다. 혹독한 
고문을 당하는 윈스턴은 자신에 대해선 아무것도 남는 것이 없고, 기록된 이름도 없고, 살아있는 사람들의 기억 속에도 없을
것이라고 위협하는 오브라이언의 말을 들으면서, 그럼 그냥 자신을 죽여 버리면 되는데 왜 그토록 힘들여서 자신을 고문하고
괴롭히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 그들이 원하는 것은 인간의 자유의지에 의한 복종이며, 고통이나 공포 때문이 아니라 진정한
회개에 의한 인간개조라고 설명하며, 그 개조가 이루어지면 그 때 죽인다고 말한다. 그리고 자신들의 이 방법에 여태까지 
버틴 사람들은 아무도 없었고, 결국 책의 마지막은 “그(윈스턴)는 빅 브라더를 사랑했다”라는 문장으로 끝이 나며, 그도 
그들이 원하는 대로 개조되었음을 암시한다.

  나는 이 책을 젊은 시절부터 여러 번 읽으면서 인간의 미래를 부정적으로 보았던 시절이 있었다. ‘멋진 신세계’와 함께 
디스토피아의 대표적인 소설인 이 책에 너무 영향을 받았던 것이 아닌가 생각된다. 그러나 이번에 다시 읽으면서 저자인 
조지 오웰에게 감사한 마음을 갖게 되었다. 그는 동물농장과 이 책의 내용처럼 미래 국가나 사회가 전체주의상태가 되지 
않으려면, 인간들의 기억을 올바로 기록해야 한다는 점을 주장하고 있다. 바라보는 관점에 따라 다를 수 있지만, 이 책은 
결코 디스토피아적 미래를 그린 것이 아니라, 디스토피아가 되지 않는 세상을 만들려면 우리가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를 
보여주고 있다.

  우리는 온라인과 오프라인으로 너무나 많은 기록물들이 홍수처럼 밀려오고, 쓰레기처럼 난무하는 있는 시대에 살고 있다.
이 책에 나오는 세상처럼 국가에서 정해준 기록물만을 보아야하는 시대와 현대 사회처럼 주체할 수 없을 정도로 검증되지 
않은 기록물이 난무하는 시대에는 아이러니한 공통점이 있다. 그것은 각 개인이 자신이 본 경험을 온전히 기억하여 온전히
기록하지 못하게 한다는 상황을 만들려는 세력들이 있다는 사실이다.

  기억이라는 것은 자신이 한 경험을 자신의 정신 속에 간직하고 되살리는 것이며, 기록은 그 기억에 존재하는 인간의 
정신이 여러 가지 도구에 문자나 기호로 간직되고 되살려지는 것이다. 그럴 때 한 개인의 기억이 있는 그 기록을 본 다른 
사람들의 마음속에 생명이 싹트고 새로운 창조 활동이 일어난다. 어떤 글들이 성경처럼 그런 역할을 할 수 있는지 분별하는
것은 현대의 과학으로도 불가능하지만, 윈스턴이 노트를 구입한 날 일기장에 무의식중에 적은 “빅 브라더를 타도하자”라는
글은 틀림없이 그 글을 읽는 사람들에게, 그의 영혼과 마음에 새겨진 기억이 전해질 것이란 생각이 든다.

  지구상에 존재하는 최고 베스트셀러인 성경에는 하나님이 자신의 형상을 닮은 인간을 만드셨다는 내용이 나온다. 우리는
그 방법을 알 수 없지만, 하나님 형상을 닮은 사람의 마음속에 간직되어 있는 기억은 기록을 통하여 다른 사람의 마음 속에
되살아난다는 것이 저자가 우리에게 주고 싶은 감추어진 메시지가 아닐까?. 그리고 그런 인간의 행위만이 이 세상의 가장 
소중한 것을 말살시키고 기억조차 변조시켜 자신들이 원하는 디스토피아를 만들려는 악한 세력으로부터 이 세상을 지킬 
수 있다고 주장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씽씽카를 타고 지나가면서 나를 보고 씽긋 웃던 어린 소녀의 눈망울로 인하여 달라진 하루의 기억이, 서투르고 두서없
언어의 배열로 그 기억을 기록한 나의 노트 속의 한 문장이, 절망 속에서 극단적인 생각을 갖고 있던 누군가에게 그의 어린
딸의 눈망울을 순식간에 떠오르게 할 수도 있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