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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9회 글나라독서감상문대회 청소년 우수상_도스토예프스키의 죄와 벌
제 94호 소식지
최근 뉴스에서 다루는 살인사건을 접하다 보면 극심한 잔인성과 폭력성을 마주하게 된다. 자신을 무시하는 것 같다고 
피씨방 아르바이트생을 30번 이상 칼로 찔러 죽인 사건, 전 남편에게 수면제를 먹이고 살해한 뒤 시신을 훼손하여 
쓰레기 종량제에 담아 유기한 사건, 비로소 밝혀진 화성연쇄살인범의 추가 살인 고백 등이 그 예라고 할 수 있다. 
이럴 때마다 뜨겁게 다뤄지는 논쟁은 바로 사형제도이다. 죄인을 인도주의 차원에서 교화해야 한다는 의견과 벌의 무게가 
가벼워지면 죄도 더 쉽게 저지르고 죄책감도 덜해지는 현상을 경고하며 무겁게 다스려야 한다는 의견은 그야말로 팽팽한 
균형의 추를 이룬다.

 한편 우리나라는 마지막 사형 집행이 20여 년 전에 이뤄진, 사실상 사형폐지국가로 분류된다. 생명의 존엄성이 강력한 
죄와 벌의 원칙보다 앞선다는 것이다. <죄와 벌>은 그러한 사회 분위기 속에서 참 많은 생각과 여지를 던지는 책이라고 
할 수 있다. 책은 주인공 라스콜리니코프가 돈은 많지만 비정하기 짝이 없는 고리대금업자 노파를 살해할 계획을 품는 
것에서 시작된다. 그가 노파를 죽이고자 하는 이유는 개인적인 원한 같은 그리 간단한 것이 아니었다. 살인은 나쁜 것이지만
사회에 도움이 안 되는 자는 죽어 마땅하고, 오히려 노파를 죽이는 자신이 사회악을 없애는 인물이라는 신념이 있었다. 
역사 속에서도 수많은 희생과 죽음 위에 깃발을 꽂은 영웅들이 있지 않은가.

 그러나 그의 이상과 현실은 판이하게도 흘러갔다. 고리대금업자 노파를 살해하는 과정에서 뜻하지 않게 노파의 
여동생까지 죽이게 된 것이다. 그녀는 그가 생각하는 죽어 마땅한 자가 아니었다. 오히려 사회 부조리 속에서 보호받아야 할 
선량한 존재였다. 그는 살인 이후의 난장판 현장에서 돈을 챙겨 나왔지만 그 돈을 쓸 리 만무했다. 뜻하지 않은 살해에 
양심의 가책을 느끼고 자신이 범인으로 지목될 것이라는 불안감이 깃든 그의 음울한 심경은 책 속에 고스란히 녹아져 있다.

 한편 라스콜리니코프가 예심판사 포르피리에게 범인으로 의심을 받게 된 계기가 흥미롭다. 라스콜리니코프는 과거 
'범죄에 대하여'라는 논문을 쓴 바 있다. 그의 논문에 따르면 세상에는 평범한 사람과 비범한 사람으로 나뉜다고 하였다. 
비범한 사람은 법률에 방해받지 않은 선에서 범죄를 저지를 수 있는 권리가 있다고 주장했다. 세상에 쓸모는 없고 오히려 
해만 주는 노파를 살해함으로써 자신과 같이 가난한 학생이 학업에 열중하여 꿈을 펼칠 수 있다면 오히려 세상엔 더 이로울 
것이라는 이론이다. 그의 이러한 신념을 담은 이 논문은 노파 살인사건과 연결되어 포르피리가 그를 범인으로 지목하는 
중요한 심증이 되었다.

 책에서 라스콜리니코프는 끊임없이 괴로워하고 고독감에 빠진다. 그의 주변에는 진심어린 위로를 건네는 가족들과 
친구들이 많고, 올바른 길을 제시하는 포르피리도 있었지만 그의 불안하고 신경질적인 증세는 더욱 심해져 갔다. 그런 그의 
고뇌와 음울함을 다독여준 것은 가족들을 부양하기 위해 길거리에서 몸을 파는 소냐였다. 그녀는 생계를 위해 치욕적인 
삶을 살아왔지만 종교적인 믿음은 잃지 않는 신앙적인 인물로 그려진다. 그녀에게 최초로 자신의 범행을 고백한 그는 
자신이 얼마나 어리석고 불손하였는지 깨닫고 구원을 얻게 된다.

 세상에는 완벽해 보이는 이론들이 많다. 우리는 그곳에서 근거를 찾고 정의를 논한다. 그런데 중요한 것은 인류애를 
무시하고 존엄성을 반영하지 않는 이론은 위험하다는 것이다. 라스콜리니코프는 자신이 노파를 죽임으로써 인류에 더 큰 
도움이 될 것이라고 믿었다. 그의 '범죄에 대하여'라는 논문은 그러한 설득력이 있어 보였고, 나폴레옹과 같은 영웅 탄생은 
그러한 일부의 희생이 필수불가결하다고 피력했다. 그러나 그는 결국 자신이 한낮 살인자임을 깨닫고 자수를 한다. 
누군가의 존엄성을 앗아가는 것에 '선'이 깃든다는 것은 우리의 양심을 덜하게 해줄 속임수에 지나지 않기 때문이다. 
도스토예프스키는 100여 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우리에게 말을 건네고 있는지도 모른다.

"신과 악마가 싸우고 있다. 그 전쟁터가 바로 인간의 마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