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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8회 독서감상문대회 일반부 우수상_골든아워를 읽고
제 79호 소식지

두 언니의 골든아워_골든 아워를 읽고

 

  이국종 교수님을 처음 접한 것은 ‘세상은 만만하지 않습니다’ 주제로 강연하셨을 때이다. 첫인상은 사실 호감을 느끼기 보다는 무표정과 예리한 눈매가 좀 차가워보였다. 그때는 ‘살릴 수 있는 생명이 많지만, 우리나라 응급의료체계로는 턱없이 부족하고 지금도 많은 생명이 안타깝게 생을 달리하고 있습니다.’ 라는 교수님 말씀에 동감이 되다가도 그저 딴 세상이야기 같았다. 그러다 아덴만 여명 작전에서 부상당한 석해균 선장을 소생시킨 주인공으로서 TV에 나와 브리핑하시는 모습을 보고, 죽음의 문턱까지 갔던 선장을 살려 낸, 실력이 뛰어난 의사정도로만 여겨졌다.

 

  그러나 나는 얼마 지나지 않아 이국종 교수님하면 척박한 현실에서 사람을 살리는 응급의료 시스템의 선구자로서, 정말 귀중한 분이라는 것을 몸소 깨달았다. 우리 집은 할머니부터 부모님에 이르기까지 고혈압 환자로서 평생 약을 드시다 돌아가셨다. 집안 내력은 아무리 감추려 해도 40대가 들어서면서 형제들을 위협하기 시작했다.

 

  급기야 셋째 언니는 마흔 셋 이라는 젊은 나이에 혈관계통의 문제로 쓰러지고 말았다. 몹시도 추운 겨울, 새벽에 화장실 앞에 쓰러진 언니를 발견한 형부는 먼저 119에 신고를 하고, 떨리는 손으로 심폐소생술을 있는 힘껏 했다고 한다. 소식을 들은 우리 가족들은 이른 새벽에 모두 비상사태로 발만 동동 구르고 있었다. 잠시 뒤, 형부한테 전해들은 소식은 근처 지역 병원에서는 어떻게 손을 쓸 수 없어 서울에 있는 큰 병원으로 이동 중이라고 했다. 우리 가족도 서둘러 언니가 실려 가고 있는 병원으로 부리나케 날아갔다. 도착하니 언니는 수술을 하는 중이었고, 양쪽 집안의 가족들은 그저 깨어나기를 바라며 수술실 앞에 망연히 있었다. 드디어 수술을 하고 나온 의사가 심각한 표정으로 보호자를 찾을 때, 나는 다리에 힘이 풀려 주저앉고 말았다. 나에게는 일찍 돌아가신 부모님대신이나 다름없는, 결혼 한 후에도 오로지 친정과 동생들 걱정에 늘 살뜰히도 챙겼던 언니가 이리 되다니, 그때 처음으로 내가 믿는 신을 얼마나 원망했는지 모른다. 나는 그렇다 치고 10, 7, 3살 이 어린 조카들은 이제 어떻게 살아가야 하나, 온갖 생각이 떠올랐다. 무엇보다 아직 젊디젊은 나이에 인생을 완전히 펴 보지도 못하고 언니가 이리 되다니, 삶이 정말 허망했다. 언니는 결국 중환자실에서 이틀 밤을 넘기지 못하고 이 세상과 긴 이별을 하게 되었다.

 

  그 당시에는 너무 언니를 잃은 슬픔에만 빠져 응급환자 이송체계와 응급의료병원에 대해 생각을 미처 하지 못했다. 하지만 정신을 차리고 보니 이 교수님이 말씀하신 ‘골든 아워’의 중요성과 ‘막을 수 있었던 수많은 죽음을 목격하고도 왜 우리는 변하지 못하는가?’ 에 대한 물음에 나도 의구심이 강하게 생기기 시작했다. 그마나 이 교수님이 몸담고 계신 병원은 아직도 모든 것이 열악한 현실이지만, 그래도 유학시절에 접했던 국제 표준에 맞는 응급의료 시스템을 자리 잡게 하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교수님과 함께 하는 이들이 있어 희망이 보인다. 하지만 대부분의 병원에서는 여전히 체계적인 의료시설이 준비되어 있지 않아, 응급환자를 꺼리게 되는 상황이 발생하고 있다.

 

  셋째 언니의 경우, 이 교수님이 강조하는 ‘골든 아워, 60분’을 한참 지나고 말았다. 곧바로 언니를 수술 할 수 있는 의료장비가 갖추어진 병원으로 이송이 됐더라면 얼마나 좋았을까, 형부가 그날 지역병원이 아닌 대학병원을 소방대원에게 주장했지만, 그 분들은 생명이 넘어가려는 환자를 보고도 자신들은 지역병원으로 먼저 가야한다는 의무감을 강조하셨다고 했다. 거기에서부터 셋째 언니의 생명은 멀리 달아나고 있었다. 60분 안에 도착하여 응급조치를 제대로 받으며 바로 수술대에 오를 수 있었더라면, 지금쯤 세 아이의 엄마로서 평범하게 살아 갈 수 있었을 텐데...... . 몇 년이 지난 지금도 아쉬움과 후회스런 마음이 들다가 어느 순간엔 화가 나기도 한다. ‘내 환자들이 숨을 거둘 때 살이 베어나가듯 쓰라렸고, 보호자들의 울음은 귓가에 계속 남는다’ 는 교수님의 글귀를 읽으며, 단 한 생명도 놓치지 않으려는 교수님 같은 분을 우리 언니가 만났더라면 얼마나 좋았을까? 라는 생각이 간절했다.

 

  생명과 직결된 것임에도 먼저 손익계산을 따져야 하고, 돈이 되는 의료를 해야만 환영을 받는 우리나라의 현실이 언니의 일을 겪고 나니 이제는 남의 일이 아닌, 나와 내 가족이 또 다른 희생자가 될 수 있음을 뼈저리게 느꼈다. 완벽한 응급의료시스템을 갖추고도 목숨을 살리지 못한다면 그것은 어쩔 수 없지만, 앞으로 정부와 병원에서 당장 눈앞에 보이는 이익만을 쫓지 않는다면 더 많은 생명을 구할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에 괜히 마음이 조급해졌다.

 

  그 날은 친정아버지의 기일 날 이었다. 그때 첫째 언니는 오빠네 집 옆에 살고 있었다. 오빠네 집에서 추도예배를 드리고, 좀 머리가 아프다며 집에 가서 두통약을 먹고 오겠다던 언니가 좀처럼 오지 않았다. 그래서 나는 다행히 알고 있던 비밀번호를 누르고 언니를 부르며 들어갔다. 세상에나! 언니는 주방에서 휴대전화를 손에 쥔 채, 쓰러져 있었다. 나는 밖으로 나와 밥을 먹고 있던, 식구들에게 언니가 쓰러졌다며 소리를 질렀다. 곧바로 119응급차가 오고, 언니는 이 교수님이 몸담고 계신 아주대학교 병원에 천만다행으로 1시간 안에 도착했다. 그 뒤, 발 빠른 응급조치와 검사를 한 뒤, 지체 없이 수술실로 들어갔다. 셋째언니와 똑같은 질환이었지만, 큰언니는 빨리 손을 써 서살 수 있었다. 나는 그때 셋째언니의 악몽이 떠올라 큰언니도 이제는 영영 볼 수 없겠구나 라는 생각을 지울 수가 없었다.

 

  그러나 큰언니는 비록 중환자실에서 오래 투병생활을 하긴 했지만, 현재 재활 치료를 받으며 일상생활에 큰 지장 없이 지내고 있다. 병원에서는 감사하게도 언니가 힘든 병원 생활에 지칠 때 쯤, 기적처럼 살아나서 치료도 열심히 받는다며 상까지 주셨다. 물론 언니의 몸은 쓰러졌다 깨어난 상황이라, 언니 마음대로 되지 않고, 예전처럼 자유롭게 활동 할 수 없어 우울증이 오기도 한다. 하지만 큰언니는 항상 셋째 언니를 생각하면 자신은 얼마나 감사한지 모른다며, 다시 긍정적인 마음을 굳게 먹는다. 큰언니도 만약 ‘골든아워’를 놓치고, 수술할 병원을 찾지 못해 중요한 순간을 놓쳤더라면 어떻게 됐을까? 30분만 늦었어도, 아니 10분이라도 늦었다면 아마 큰언니는 지금도 병원에서 걸어 나오지 못했을 것이다. 이제는 아무렇지 않은 듯, 일상생활을 하는 언니의 모습을 보며 참, 목숨이라는 것이 이런 작은 차이, 하지만 너무나 중요한 순간을 어떻게 대처하느냐에 따라 달려 있다는 것이 놀랍기도 하며 두려운 마음까지 든다.

 

  그 때, 큰언니를 싣고 가던 응급차에서 내가 좀 안심했던 부분은 소방대원분과 병원관계자분이 계속 언니의 상황을 놓고 소통을 하고 있는 점이었다. 그래서 병원에 도착했을 때는 이미 언니가 받아야 할 응급조치와 검사, 그리고 수술준비까지 일사천리로 착착 진행이 되었다. 결국, 이 교수님이 말씀하신 중증환자를 다루는 골든아워 시스템 덕분에 언니는 지금 나와 함께 살아가고 있다.

 

  교수님의 글을 읽는 내내, 전에는 공감하지 못했던 내용들도 이제는 내 가족의 이야기가 되면서 안타까운 순간에는 셋째 언니가 생각나 나도 모르게 그의 가족이 되어 진심으로 마음아파하게 되었다. 생명의 시간에 늦지 않고 교수님의 손길로 살아난 환자들의 이야기 속에서는 큰언니가 떠올라, 어려운 현실 속에서도 생명을 살리려 애쓰는 이들의 피나는 노력에 경외감이 들었다.

 

  부디 원칙을 지키며 오로지 생명을 살리는 것에만 온 신경이 몰려 있는 이국종 교수님이 마음 편히 진료를 펼칠 수 있는, 수준 높은 응급의료 시스템이 우리나라에도 하루빨리 정착하기를 손꼽아 기다린다. 그래서 이 교수님이 방송에서 ‘이 세상은 만만하지 않습니다.’ 가 아닌 ‘이 세상은 살 만합니다.’ 라는 강연을 하시는 날이 오기를 간절히 바래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