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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8회 독서감상문대회 일반부 우수상_한 스푼의 시간을 읽고
제 79호 소식지

아이의 성장은 나의 성장이다_한 스푼의 시간을 읽고

 

이민정

 

  비가 내린다. 하늘에 구멍이라도 뚫린 듯 세차게 퍼붓는다. 우산을 써도 열린 틈 사이로 들어오는 비까지 막을 순 없다. 비 맞으면 안 되는데... 멍하니 창문을 바라보다 번득 시간을 확인하니. 하교 시간. 아이는 괜찮을까.

 

  오늘 아침 빗소리에 늦잠을 자버린 나는 동동 거리면서 아이를 깨우고 뜨끈한 국물을 끓이느라 분주했다. 하지만 입맛이 없다며 마른 빵 조각을 입에 넣고 일어서는 아이. 안경이 어디 있냐. 준비물은 챙겼냐, 우산 가지고 가라.... 서운할 새도 없이 나만 바쁜 아침을 보내고 베란다에서 멀어져가는 아이를 바라보다 멍해져 뒤돌아선 집은 폭풍우가 휘몰아친 이후의 고요만 남아있다.

 

  다시 집으로 돌아올 것을 알기에 그래도 이 평화를 즐기는 것. 손 뻗으면 다시 아이를 만질 수 있기에. 사춘기 모진소리를 하고 벽을 쌓아도 그래도 다시 내 품으로 올 것을 알기에. 오늘도 나는 엄마라는 이름으로 산다. 하지만 만일. 나에게 아이가 없어진다면, 어느 날 갑자기 아이가 사라진다면 어떤 기분이 들까? 살았는지 죽었는지 조차 알 수 없다면, 더 이상 목소리를 들을 수도, 만질 수도 없다면 어떤 기분이 들까.

 

  그에게 어느 날 시체가 배달되었다. 죽은 아들로부터. 그리고 그 시체는 그로부터 생명을 얻고 태어나지 않았던 그의 둘째아이 이름인 은결로 살아가기 시작했다. 아들도 아내도 저 먼 세상으로 가버리고 은퇴 이후 좁은 세탁소에서 삶을 그저 이어가던 명정에게 어쩌면 은결의 만남과 그로 인해 바라보는 세상은 어제와는 다른 또 다른 문이 열린 것이 아니었을까. 이전의 그가 대한민국 아버지들이 그러하듯 회사일로, 본인의 삶으로 바쁜 하루하루를 지내왔기에 아이가 크는 모습도 아이의 생각도 볼 수 없었다면 그의 곁에 많은 것이 떠난 순간 그의 아들을 꼭 닮은 은결을 만나게 된 것은 어쩌면 그의 인생에 다시 잡게 된 아들과의 새로운 기회가 아니었을까.

 

  어쩌면 나의 삶도 그러할 것이다. 평생을 살아가면서 만나지 못했을. 혹은 상상하지 못했을 인연들을 아이를 통해 만나게 되고 시련과 고통과 즐거움을 동시에 얻어내며 지금 나는 성장을 경험하고 있다그렇다. 삶이라는 것은. 내가 그리는 대로 만들어지지는 않는다. 특히 아이를 만나고 아이를 키워가면서 더 내 맘대로 될수 없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런 의미에서 <한 스푼의 시간>은 나에게 많은 것을 던진 책이다.

 

  세연과 준교 시호의 삶을 따라가면서 보여주는 에피소드들은 인생은 원했던 곳으로 갈 수만은 없음을 알려주었다. 사고로 인해 하루아침에 닥친 집안의 몰락, 삶을 저당 잡힌 가난의 굴레, 남편의 외도, 서로를 위하지 않는 가족. 그리고 갑자기 찾아온 아버지의 죽음, 불공평한 세상, 타인으로부터의 폭력... 수많은 시련 속에서도 버틸 수밖에 없는 어린 청춘들. 때로는 세상을 등지고 싶은 마음이 들고, 상대의 시선과 말에 문을 닫고자 모자를 눌러쓰지만, 그럼에도 그들은 로봇 은결을 통해 진짜 마음을 보여주고 위로를 받는다. 그리고 그때마다 은결은 때로는 어깨를 내어주고 예상치 못한 답을 하며 그들의 우정을 쌓아간다.

 

  누군가에게는 스스로 깨지 못할 정도로 고된 삶의 무게. 그럼에도 불구하고 세연과 준교 그리고 시호는 시련을 벗어나기 위해 긍정의 방향으로 손을 뻗고 결국 발을 내밀어 희망을 발견한다그래. 그게 삶이지. 그래야 맞지... 정확한 답을 낼 수 없는 다양한 상황들은 언제나 존재한다. 이게 맞을까. 후회하진 않을까. 정확한 매뉴얼로 답을 내릴 수 있다면 과연 편할 수 있을까. 그러다 생각한다. 그렇다면 로봇 은결은 어떤 생각이었을까. 책속의 아이들이 초등학생에서 성인이 되는 동안 그 모습 그대로 간직한 은결이지만 시간이 지남에 따라 은결도 그만의 생각이 생기게 된다. 때로는 농담을 던지고 상황을 스스로 판단하는 인간의 모습이. 이렇게 스스로 성장하는 은결의 모습은 어쩌면 매 질문에 더 옳은 답을 주기 위해 고민하는 명정이 있었기에 가능했던 것이 아닐까.

 

  세상을 바라보는 시선은 누구에게나 다 다르다. 그렇지만, 세탁소 안에서 은결의 성장을 지켜보는 명정과 사춘기를 겪고 있는 딸을 키우는 나의 시선은 평행하다. 안전한 공간에서 나의 시선 안에 있기를 바라면서도 더 큰 세상을 향해 가길 바라는 마음은 공존한다. 그래서 그는 본인의 죽음 앞에서 은결의 내일을 걱정했고 담백하면서도 사랑의 눈으로 바라본 은결의 일상을 편지로 남겼다.

 

  세상의 오물을 다 묻혀 새것처럼 되돌릴 순 없지만 세탁을 통해 깨끗이 되돌리고 싶은 마음과 그럼에도 불구하고 기억만큼은 지우지 않았으면 하는 이중적인 마음. 명정의 마지막 편지는 아버지의 마음이었다. 비록 명정의 편지처럼 행하지 않았지만 은결은 본인의 판단 하에 편지를 찢고 거품 속에 발을 담갔다죽을지.. 아니 리셋될 지 그는 몰랐을까. 아니 알았을 것이다. 하지만 진짜 은결의 마음은 사랑으로 본인을 대하던 명정의 곁으로 가고 싶었던 것이 아니었을까.

 

  인생은 선택의 연속이다. 그리고 그 선택은 실패와 좌절 속에서 성장한다고 저자는 이야기한다. 모든 일의 선택은 스스로 하는 것이며 결국 세상을 향해 나가는 수많은 문중에 해답은 자신에게 있음을 전하는 책. 한 스푼의 시간은 나에게 아이라는 문을 통해 세상을 바라보는 방법을 알려주었다. 쏟아지는 비쯤이야 맞아도 되는 우리의 인생의 한 스푼의 시간임을. 이 또한 성장의 순간임을 깨달아야겠다

 

  아이가 온다.

  나를 성장시키는 나의 아이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