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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8회 글나라독서감상문대회 고등부 우수상
제 78호 소식지

책 제목: 전태일 평전

제목: 빛을 쫓는 불나방   --- 곽민


어느 날 어머니께서 책 한 권과 마주앉아 길게 탄성을 지르셨다. 어머니는 책의 내용에 감정이입이 되신 듯 연신 얼굴이 울그락불그락 달아올랐다. 나는 ‘무슨 책 인데 그러세요?’ 라고 여쭤보고 싶었다. 하지만, 어머니의 감정을 방해하고 싶지 않았다. 한참 시간이 흐른 후에야 어머니께서는 피곤하신 듯 얼굴을 벅벅 문지르시며 안방으로 들어가셨다. 나는 살금살금 어머니께서 앉아 계시던 탁자 앞으로 걸어갔다.

 


‘전태일 평전’ 이라는 책의 하얀 색 겉표지가 내 마음 속으로 뚜벅뚜벅 걸어 들어왔다. 노동운동을 하며 분신을 하다 죽어 간 전태일, 아름다운 청년 전태일...... 전태일이라는 이름 앞에 수많은 수식어들이 빠른 필름처럼 뇌리를 스쳐갔다. 각종 매체에서 많이 들어 본 익숙함 때문이었다. 다소 무거울 것 같은 책의 내용을 짐작했음에도 불구하고, 나는 귀신에 홀린 듯 성큼 그 책을 집어 들었다.

 


전태일이 1966년부터 1970년까지 평화시장에서 일하면서 일기와 편지를 기록한 5권의 노트가 유서로 남겨졌다. 그 유서들을 인권변호사인 조영래가 정리하고 추후 집필을 했다. 전태일이 불우하고 험난한 시절을 경험하며 부유하고 강한 자자 지배하는 사회에 대해 저항하고 투쟁을 한 흔적이 고스란히 전해지는 내용이다. 사회의 불합리한 현상에 대해 과감히 자신을 희생할 수 있는 용기, 그런 전태일의 삶을 들여다보며 생각했다. 나는 내 주변의 부당한 일에 대해 저항할 용기가 있는가?

 


난 조용하고 말수가 적은 성격이다. 친구들의 싸움에도 개입을 하지 않고 지나쳐 버리는 타입이다.  내 안위와 관계되지 않는 일에는 적당히 눈을 감고 외면하며 살아왔던 것 같다. 개울가에 잔잔한 물이 흐르듯 안일한 삶을 살았다. 하지만, 전태일은 타인을 위해 큰 파도와 폭풍을 온 몸으로 부딪히며 자신의 삶을 희생했다. 가난하고 불우한 환경에 처한 노동자들을 대변하고, 노동운동을 했던 그는 바다를 품을 수 있는 큰 사람이다.  그릇이 큰 사람은 그 안에 많은 걸 담아낼 수 있다. 전태일 열사가 일생을 바쳐 얻고자 했던 건 바로 사회개혁이었다.  그가 ‘부한 환경’ 이라고 일컫는 계층으로부터 지배당하지 않는 사회, 수많은 노동자들이 일한만큼 대가를 보장하는 사회. 전태일이 애타게 갈망하던 사회는 모든 사람이 평등한 사회가 아니었을까?

 


그가 평화시장 재단사로 일할 당시, 좁고 열악한 환경에서 15시간씩을 쉬지 않고 일을 했다고 한다. 잠시 그 당시 전태일로 빙의되어 회상을 해 보았다. 상상만 해도 숨 막히고 처참한 현실이 또렷하게 그려졌다. 자신의 처지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1만 명의 평화시장 노동자들이 처한 현실에 분노를 일으키고 자신을 희생하기로 다짐을 했다. 내가 만약 전태일이었다면 감히 그런 다짐은 생각조차 못 했을 것이다. 어렵고 암담한 내 처지만 생각하며 세상을 원망하고 좌절하며 살았을 것 같다. 뜨거운 불볕더위가 기승을 부리는 요즘, 단 몇 분만 걸어도 금방 지쳐버리는 나는 부끄러운 마음이 들었다.

 


1965년~1973년 사이에 경제개발이 이루어지고 더불어 우리나라 경제도 급속도로 성장했다. 하지만, 우리나라의 경제 발전에는 저임금으로 장시간 노동에 시달렸던 수많은 노동자들의 희생이 강요되었다. 그들의 설움이고 한이었다. 경제가 고도성장을 하지만, 그로 인한 수익은 대부분 평화시장 업주에게 돌아갔다고 한다. 업주들은 강남 개발에 투자를 하며 더 큰 수익을 노렸다. 지금의 강남 지역에 이런 비극이 서려있다니. ‘보여 지는 호화로운 겉모습이 다가 아니구나.’ 라는 생각이 들었다. 당시 불평등한 이익 분배에 대해 수많은 노동자들은 입을 다물었다. 부양할 가족이 있었기에 그들은 부당한 대우에도 말 한마디 못하고 순응을 할 수 밖에 없었다.  이러한 사실은 요즘 흔히 말하는 갑질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내 위치가 높고 가진 것이 많다고 해서 인권을 무시하고 짓밟는 행위를 할 권리는 없다. 지위와 경제적 형편에 따른 갑질 현상은 예전이나 지금이나 변함이 없다는 생각에 씁쓸했다. 그렇다면 우리 인간 사회가 동물들과 다를 게 무엇인가? 동물들의 먹이사슬 체계와 유사하게 돌아가고 있는 건 아닐까? 강한 자가 약한 자를 괴롭히고 잡아먹는 먹이사슬, 결국 가장 강한 자가 먹이사슬의 가장 꼭대기에 앉아있다. 당시 가진 것 없고, 힘없던 전태일이 약한 자들을 대변해 강한 자들에게 저항했던 과정들이 얼마나 외롭고 고달팠을지 짐작이 갔다. 계란으로 바위치기였음을 그는 이미 알고 있었을지도 모른다. 전태일 열사는 계란처럼 불리한 상황에서도 바위치기를 거듭하고 드디어 투쟁에서 승리를 이루어 내는 기적을 보여주었다.

 


나는 가끔씩 내 뜻대로 안 풀리는 수학 문제가 있을 때 자포자기 해 버리기도 했다. 하지만, 무슨 일이든 그 일의 크고 작음을 떠나 시도를 해 봐야 할 것 같다. ‘기적 같은 꿈을 꾸고 있다면 기적 같은 노력을 해라.’ 어디선가 읽은 적 있는 글귀가 떠올랐다. 이 책을 통해 엿본 전태일의 불굴의 의지는 내 가슴속에 점점 물들어갔다.  1966년 그가 미싱사로 일하던 당시 월급을 부당하게 계산해 주던 재단사를 보며 그는 또 다른 꿈을 꾼다. 그는 재단사가 되어 노임을 결정할 때 약한 직공들의 편에 서리라고 결심을 하게 된다. 그가 재단사가 되리라는 다짐 속에는 임금에 대한 ‘정당한 타협’ 이 크게 자리 잡았다.

 


약한 자들을 대변하고 보호하기 위해 꿈을 꾸는 전태일!  지금 우리 사회에 타인을 위해서 꿈을 꾸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대부분 나의 명예와 성공을 위해 꿈을 꾸고 달려가고 있을 것이다. 내 미래의 꿈은 사회적으로 성공한 CEO가 되는 것이다. 엘론 머스크처럼 혁신적인 사업가가 되어 명성을 알리는 상상을 해 보기도 한다. 하지만, 이 책을 읽어 내려갈수록 나의 꿈에 무언가가 비어 있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사회에 어떠한 영향을 미치는 사업가로 거듭날 것인가?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마냥 나의 명예와 성공을 위한 꿈이라면 그 가치의 부피는 과연 얼마나 될까? 요즘 흔히 말하는 ‘사회적 기업’이라는 단어가 불현 듯 떠올랐다. 사회를 통해 얻은 부의 일부를 다시 사회에 환원하는 기업! 사회의 취약계층이나 환경운동에 적극 참여를 하는 기업, 그런 기업을 운영하는 사업가가 된다면 어떨까? 내 꿈에 더 큰 의미를 부여할 수 있을 것 같다.  솔직히 전태일 운동가처럼 자신의 모든 것을 바치면서 사회개혁에 이바지 할 자신은 없다. 하지만, 적어도 사회에 선한 영향력을 미치는 좋은 어른으로 성장하고 싶다.

 


‘조직화 된 소수의 억압자들에게 대항하는 길은 억압받는 사람들이 노예의식을 버리고 자신의 권익을 주장하는 자유인으로 조직화 된 다수가 되어 투쟁할 결의에 차 있다면 이것이 바로 민중운동의 전진이며 이것이 바로 민주화이며 진보이다.’ 전태일이 남긴 이 문장에서 또 다른 생각을 해 보았다. 자신의 처지가 을이라 할지라도 권익을 주장하고 부당함에 대해 저항을 하는 것이 곧 민주화이며 진보라고?  잠시 머릿속이 어지러웠다. 결국, 자신의 권익을 스스로 주장할 수 있는 사회는 사회의 모순을 개혁해 나가려고 하는 정신이 있어야만 이루어진다는 말일 것이다.  자신이 꿈꾸는 사회는 스스로 개선하고 개척해 나가야만 이루어진다고 그는 말하고 있다.

 


그의 그런 생각은 1969년 ‘바보 회’ 설립으로 이어진다. 그는 아버지로부터 근로기준법의 존재를 듣게 되고 근로자들의 근로 조건 개선을 위해 엄청 난 노력을 한다. 근로감독관실과 노동청에 진정서를 넣지만, 평화시장 업주들의 불법 행위가 묵인되는 현실에 부딪히게 된다. 정부 관료들과 업주들의 실태는 분명 부정한 행위라고 생각한다. 오늘 날 매스컴에서 이슈인 일부 정치인들과 기업인들의 부정부패와 같은 사례가 아닐까? 결국 전태일은 위험한 인물로 간주되어 평화시장에서 쫓겨나는 상황을 맞는다. 사회개혁에 대한 그의 꿈이 이대로 무너지는 것인가? 나는 너무 억울하고 안타까운 마음이 들었다.  하지만, 그의 의지는 ‘삼동회’라는 조직으로 다시 드러나게 된다. 그는 노동청장에게 진정서를 내고, 언론사에 고발을 하고, 시위를 하는 등 끝없는 투쟁을 이어간다. 그러나 중부 경찰서의 방해로 수포로 돌아가게 된다. 민중의 지팡이라는 경찰의 그런 만행이 이루어졌던 시대라니, 참 어이없는 일이다.

 


1970년 11월 13일, 그는 근로기준법을 외치며, 분신을 시도한다. 그 처참한 현장을 상상하니 살이 떨렸다. 사회개혁에 대한 의지가 얼마나 절실했으면 그런 선택을 했을까? 자신의 몸에 석유를 뿌리고, 불을 붙이는 용기...... 나는 감히 상상할 수도 없는 일이다. 물론, 자신의 목숨을 버리는 행위는 비도덕적인 일이다. 하지만, 평등한 사회를 꿈꾸는 그에게 최후의 수단이었다. 극단적인 선택을 해서라도 사회개혁을 이루어 내고 싶었던 그의 큰 뜻을 절대 잊지 말아야 한다. 안일한 삶을 사는 우리가 그의 죽음을 비도덕적이라며 비판할 자격이 있을까? 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가 자신을 바쳐서라도 이 사회에 말하고자 했던 건 근로자들의 근로 개선과 민주화 사회였다.  그의 희생은 사회의 지식인, 대학생, 노동자, 시민들에게 큰 파장을 일으키는 계기가 된다. 추후 노동운동에 관심을 갖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1970년 이후 한국의 노동운동에 큰 변화가 일어난다. 또한 전태일 열사의 분신 사건은 민주화운동에도 큰 영향을 미친 계기가 되었다. 이렇게 한 개인이 사회의 변화에 큰 기여를 한 과정이 고스란히 기록되어 있는 책이다.

 


한 개인은 사회에서 작은 존재지만, 그 개인으로 인하여 사회 전체가 변화하고 성장할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만약 그의 희생이 없었다면 현재 우리나라의 노동자들의 환경은 지금보다 더 열악했으리라고 본다. 또한, 민주화시대도 조금 더 늦게 실현되었을 것 같다. 이 책을 읽음으로서 더욱 놀란 것은 전태일 열사의 어머니가 그의 유언을 실현시켰다는 점이다. 보통의 어머니라면 자식의 죽음에 대해 통곡하고 좌절했을 텐데, 열사의 어머니는 노동운동과 민주화운동으로 남은여생을 바쳤다. 노동운동이 자식의 죽음을 있게 한 원인임을 알면서도 그 뜻을 이어간 어머니의 위대함이 느껴졌다. 위대한 어머니가 훌륭한 자식을 낳는다는 말이 저절로 떠올랐다.

 


사람이 사람답게 살아가고, 모두가 어우러져 살아갈 수 있는 세상!

지위, 재력을 막론하고 모두가 평등한 세상!

아직 그런 온전한 세상은 아니지만, 우리는 점점 다가가고 있다고 생각한다. 우리 모두가 전태일 열사의 정신을 마음에 새기고 그의 헌신적인 죽음을 헛되이 하지 말아야 할 것이다.

 


전태일 열사에게 또 한 가지 놀란 점은 학구열과 뛰어난 문장력이다. 초등학교 중태를 한 그가 근로기준법을 공부한 것과 일기에 기록된 단어와 문장들을 보면서 나 자신이 부끄러웠다. 불우한 환경에서 태어나 자랐음에도 자신의 신념을 지키고 글로 기록을 하며 투쟁을 했던 전태일 열사! 만약 그가 지금 이 시대에 태어났다면 배움에 대한 갈망을 충분히 해소했을지도 모른다. 지금은 장학금 제도라는 것도 마련되어 있으며 배움의 길이 얼마든지 열려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자신이 살아 온 시대나 환경에 대한 원망은커녕 그런 사회와 체제를 개선하려고 했던 점은 높이 평가를 해야 한다. 22살의 젊은 나이에 평화시장 앞 길거리에서 죽어 간 그의 넋을 기리며 무거운 마음으로 책장을 덮었다. 아직 채 사라지지 않은 사회의 불평등과 모순에 대해 저항하고 투쟁하려면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할까? 누군가는 전태일이 되어야 하고 또 누군가는 전태일 열사의 어머니가 되어야 하며, 다른 누군가는 이 책의 저자 조영래 인권변호사가 되어야 한다. 마냥 누군가가 남일 것이라고 미루기보다 나 스스로가 앞장을 서서 그들의 뒤를 이어가는 자발적인 자세가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적어도 당시 평화시장 업주, 부패한 정부 관료와 중부 경찰서 사람들이 되어서는 안 된다. 사회개혁에 기여는 못할지언정 방해꾼이 되는 일은 최소한 없어야 한다. 전태일 평전을 읽은 후 내 사고의 세계가 조금은 넓어진 것 같다는 느낌이 들었다.

 


‘올해와 같은 내년을 남기지 않기 위하여 나는 결단코 투쟁하련다. 역사는 증명한다.’ 그가 남긴 어록이 내 마음 속 깊이 박혔다. 지금 이 순간도 먼 훗날 역사로 기록될 것이다.  밝은 미래를 위한 역사를 만들어 나가야겠다고 나 자신과 약속을 해 본다. 그것은 오늘을 사는 나의 사명감이다.  또한 우리 모두의 의무라는 생각을 해 본다. 빛 주위를 맴돌다가 불 속으로 뛰어드는 삶을 살다 간 불나방! 불나방 같은 삶을 살다 간 전태일 열사! 사회의 밝음을 위해 헌신한 그의 삶...... 잠자리에 드는 순간까지 그의 삶이 빠른 필름처럼 뇌리 속을 스쳐갔다. 무언가 뜨거운 여운이 가슴속에 산불처럼 번져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