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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8회 글나라독서감상문대회_고등부 최우수상
제 77호 소식지

과학자를 꿈꾼 내가 라몬 이 카할에게 

 

김민경

 

 

  나는 엄청 어렸을 때 부모님이 아프셔서 잠시 할머니의 집에서 살았다. 내 또래 아이들이 없는 동네에, 집 뒤에는 공업고등학교. 글도 잘 모르는 아이가 놀 수 있는 곳이 아니었다. 어린 내가 가지고 놀 장난감은 달력 뒤 흰 종이와 볼펜들밖에 없었다. 나는 매일 할머니와 할아버지의 얼굴을 그렸다. 가끔은 할아버지의 손을 잡고 옥상에 올라가 위에 있는 식물들을 그렸다. 그렇게 시간이 지나 어린이집을 가게 되었을 때 우연히 집 앞에 있는 미술 어린이집을 다니게 되었다. 우연히 나는 대회에 나가게 되었고 최우수상을 받았다. 친구들, 선생님들의 칭찬과 박수는 6살의 나에겐 너무나도 달콤했다. 초등학교를 가서도 미술 학원을 다녔고 그 달콤함은 여전했다. 초등학교에 가서도 쭉 미술 학원을 다녔고 6살 때 나갔던 대회에 똑같이 최우수상을 받았다. 주변 어른들의 칭찬은 여전했으며 그런 칭찬을 좋아하던 나는 장래희망에 항상 화가를 써냈다.

 

  중학교 1학년 때는 입시 학원에 들어갔다. 그림 그리는 것이 재밌긴 했지만 매일 4시간씩 그릴 정도로 재밌지 않았다. 하지만 지금까지 한 것이 미술밖에 없는데 지금 그만두면 난 뭘 할 수 있을까라는 생각에 억지로 참고 다녔다. 2학년이 되었고 정말 미술이 좋아서 하는 친구들과 나는 실력 차이가 점점 날 수밖에 없었다. 이런저런 스트레스에 나는 11년 동안 들고 있던 스케치북을 내려놓았다. 4B 연필을 내려놓고 샤프를 손에 쥐고 그동안 안 했던 공부를 따라가느라 중학교 2학년은 눈 떠보니 지나가있었다. 그렇게 시간을 보내고 나니 중학교 3학년 가을이 되었던 것 같다. 그 당시는 유X브가 한창 발달의 변곡점을 지나던 순간이다. 중학교 3학년 때 수학학원을 다녀오고 시간이 많던 나는 여러 크리에이터의 메이크업 영상을 보았다. 너무 재밌었다. 그렇게 재밌는 게 없었다. 미술을 해서 그런가 형형색색의 립스틱 발색들, 아이섀도우들의 조합 너무 재밌었다. 그림은 매일 4시간씩 못 그렸지만 영상은 매일 4시간씩 찾아볼 정도로 말이다. 나는 그렇게 화장품을 만드는 사람이 되어야 겠다고 결심했다.

 

  초등학교 1학년부터 중학교 2학년까지 화가로 채워졌던 나의 장래희망 칸은 화장품 CEO로 새롭게 채워졌다. 고등학교에 들어와서 나의 멋진 Future~를 생각해보던 중 나는 화장품 CEO가 아닌 화장품 개발연구원이 되고 싶은 것이라는 걸 깨달았다. 그에 관해 알아보며 내가 진학해야 되는 학과는 화학과임을 알게 됐다. 그렇게 과학에 관련된 활동을 하다가 어쩌다 부유한 10퍼센트가 아니라 소외된 90퍼센트를 위한 기술, 적정기술에 대한 뉴스를 접했고 적정기술에 대해 알게 되었다. 나는 화장품 연구원이 아니라 세상에 기여하는 과학자가 되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무슨 바람이 불었는지 일명 청소년이 잘못을 하면 청소년원에 가고 대학생이 잘못을 하면 간다는 대학원까지도 진학하겠다는 선언을 했다. 나는 화학, 물리학, 의학 여러 분야에 관심을 가졌다. 주변 사람들에게 많은 우려의 말들을 들었다. 그림만 그리던 네가 어떻게 과학자가 되느냐는 말부터 연구원은 평생 비정규직이라는 꿈을 흔드는 말까지 들었다. 응원만 받으며 해도 이루기 힘든 게 꿈인데 그런 말들을 들으며 많이 심적으로 힘들고 다시 한 번 고민했다. 내가 너무 순간의 결심으로 달려가는 게 아닐까 걱정했다. 그렇게 고민하던 중 나는 라몬 이 카할의 <과학자를 꿈꾸는 젊은이에게>라는 책을 발견했다. 이건 나를 위한 책이라는 생각이 들어 바로 대출했다. (아주 조금 많이 길었지만 이 책을 읽게 된 그 전의 긴 이야기들이다.)

 

  책 초반에는 과학자를 꿈꾸지 않으면서 과학자를 직업으로 삼으려는 사람들은 책을 덮기를 바란다라는 문구가 있다. 그런 문구 때문일까 더 읽고 싶었다. 무조건 다 읽어내겠다는 생각을 했다. 라몬 이 카할은 노벨 생리 의학상을 수상한 사람이다. 쉽게 말해 정말 대단한 사람이다. 하지만 라몬 이 카할은 어렸을 때 공부를 정말 못했다고 한다. 정확히는 성적이 낮았다고 한다. 성적이 낮았지만 하고 싶은 공부를 찾고는 사고뭉치라는 말을 들으면서까지 실험도 하고 여러 가설도 세우고 하고 싶은 공부를 열심히 했다고 한다. 그리고 어려운 논문은 여러 번 읽으면서 꼭 이해하고 넘어갔다고 한다. 그렇게 정말 열심히 한 라몬 이 카할은 남들이 보아도 훌륭한 과학자가 되었다.

 

  마치 나의 이야기 같았다. 나도 라몬 이 카할처럼 포기하지 않고 열심히 하고 싶은 공부 남의 눈치 보지 않고 하겠다는 다짐을 했다. 나를 시험하는 것일까 그 다음 내용은 논문 쓰는 방법과 실험의 정확성을 높이는 방법에 대한 내용이었다. 솔직히 이해하기 조금 어려웠다. 읽다가 용어가 이해되지 않아서 책을 덮기도 일수였지만 다시 책을 펴서 용어의 뜻을 찾으며 조금씩, 꾸준히 읽었다. 나도 라몬 이 카할처럼 포기하지 않고 꾸준히 이뤄내고 싶었다.

 

  아직도 기억나는 게 있다. 우연수준 대비 검증, t(10) = 39.37, p < .001 라는 문구를 이해하려고 네이버 사전부터 네이버 지식인에 질문을 올리기까지 정말 그 책 내용을 하나도 놓치고 싶지 않아서 세세한 모든 것을 찾았다. 논문 쓰는 방법이라는 단원만 한 3번 읽으니까 이해가 조금 된 것 같았다. 정말 당장이라도 과학자가 된 기분이었다. 그다음엔 가난하면서도 연구를 계속 했던 시절의 이야기와 가난한 과학자에게 해주는 조언이 있다.

 

  경제적으로 어렵지만 그 일을 계속하려고 노력하는 모습은 정말 하고 싶은 일을 찾은 사람만이 보일 수 있는 모습이다. 라몬 이 카할이 그렇게 노력한 이야기들을 읽으며 혹시 라몬 이 카할이 내가 논문 쓰는 방법을 그렇게 몇 번이나 읽고 공부했다는 걸 알면 칭찬을 해줄까라는 생각을 했다. 무슨 의식의 흐름인가 싶어서 스스로도 웃겨 하고 웃으며 다음 내용을 술술 읽었다. 과학자가 건강을 챙기며 연구하는 방법부터 과학자가 결혼하면 가져야 하는 자세, 과학자가 자녀에게 하지 말아야 할 것까지 정말 제목처럼 과학자를 꿈꾸는 젊은이에게 라몬 이 카할이 하고 싶은 말들을 서술해놓았다. 할아버지가 손녀에게 쓰는 편지처럼 사소한 내용 모든 것 다 적어놓았다. 정말 과학자를 꿈꾸는 젊은이에게 알려주고 싶었던 것이 많았나 보다.

 

  그렇게 어느덧 마지막 단원을 읽어가는 중이었다. 누군가 나에게 이 책에서 제일 인상적인 부분이 무엇이냐 묻는다면 나는 고민 없이 이 구절을 이야기할 것이다. ‘천재에 대한 과도한 존경은 공정함과 겸손함이라는 바람직한 감정에 기초하고 있어서 비난하기 어렵다. 그러나 초보 과학자의 마음에서 그런 찬미가 우선시 된다면, 그것을 창의력을 무력화시키고 독창적 연구의 형성을 방해한다. 같은 결정이라면, 차라리 오만함이 수줍음보다 낫다이 구절이다다른 과학자를 존경하고 그의 과학적 이론을 찬양할 바엔 그 과학자를 뛰어넘겠다는 생각을 하라는 말이다.

 

  나는 이런 생각이 정말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지구가 우주의 중심에 있고 태양과 다른 행성들이 지구 중심을 돈다는 지동설에 감탄하며 모든 사람들이 그 과학자를 존경하고 찬양을 했더라면 우리는 태양이 중심에 있고 우리나라가 왜 사계절이 생기는지도 모른 상태로 쭉 살았을 것이다. 그런 과학자를 찬양하기보다 그 이론이 틀렸다고 자신이 맞다고 생각한 코페르니쿠스의 오만함? 덕에 그러한 사실들이 밝혀졌고 그러한 자세들 덕분에 현대 시대의 과학은 발전될 수 있었다. 나도 그전까지만 해도 뉴스 기사를 읽으며 존경하는 연구원이 있었고 정말 존경하고 찬양했다. 하지만 그 구절을 읽고 결심했다. 나는 언젠가 내가 존경하는 연구원을 능가하는 과학자가 될 거라고. 라몬 이 카할도 이길 거다. (농담 반 진담 반이다ㅎㅎㅎ) 그 구절이 있는 단원이 끝나고 마지막엔 책을 읽느라 수고했고 하고 싶은 연구를 찾아 즐겁게 연구를 하라는 응원의 편지 같은 마무리 글이 있었다. 얼굴을 본 적도 없고 목소리 한 번 들은 적 없지만 왠지 아는 과학자 할아버지께 받은 편지 같았다. 책 제목이 <과학자를 꿈꾸는 민경이에게 이 카할 할아버지가> 같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말이다.

 

  정말 책을 다 읽으니 어느덧 책을 빌린 지 3주라는 시간이 지나있었다. 정말 이렇게 오랫동안 읽은 책도 없을 것이다. 하지만 시간이 아깝거나 그런 것은 절대 절대 아니다. 이 책을 다 읽고 나니 꿈의 미로에서 어디로 가야 할 지 몰라서 헤매던 나에게 길을 알려주는 지도를 찾은 기분이었다. 그 어려운 논문 용어를 알려고 노력했던 순간이 지나고 나니 너무 즐겁고 의미 있던 시간이었고 이미 현실 세계에 있는 과학적 사실을 정확하게 밝혀내는 과학자라는 존재가 되고 싶다는 생각이 머리를 맴돌았다. 우연 수준 대비 검증, t(10) = 39.37, p < .001 라는 식의 의미를 아는 나에게 꿈을 이룰 수 있다는 확신이 들었고 예전에 들었던 말 중에 과학자는 평생 비정규직이라는 거 이제는 나한테 별로 신경 쓰이지 않았다. 하고 싶은 것인데 비정규직이든 뭐든 무슨 상관인가.

 

  이 책은 나의 진로에 대해 확신을 가지게 해주었다. 그리고 만약 미래에 과학자라는 꿈이 아니라 다른 꿈이 생기더라도 나는 그것에 대해 노력할 것이고 나는 해낼 수 있다는 확신을 하게 해주었다. 나에게 삶에 대한 지도를 그리게 된 것이다. 어렸을 때 연필과 스케치북으로 정말 그림 [명사] 1. 선이나 색채를 써서 사물의 형상이나 이미지를 평면 위에 나타낸 것.을 그렸다면 이제는 나의 꿈을 위한 무한한 그림을 그려볼 생각이다. 외할아버지의 손을 잡고 본 여러 사물처럼 나는 라몬 이 카할의 책을 잡고 여러 세상을 보게 되었다. 나도 나중에 <과학자를 꿈꾸는 젊은이에게>처럼 <방황하는 젊은이에게>라는 책을 내 볼까 싶다. 이 책 덕분에 나는 3학년이 된 지금도 열심히 과학자를 향해 달려가는 중이다. 라몬 이 카할을 만날 순 없겠지만 혹여나 만나게 된다면 지금 이 종이에 쓴 이야기들을 전해주고 싶다. 과학자를 꿈꾼 내가 라몬 이 카할에게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