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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6회 글나라 편지쓰기대회 고등부 최우수상 서태란님
제 50호 소식지

12월 어느 늦은 밤, 온 세상을 하얗게 물들였었던 눈송이 같은 연희에게.

 

"등 뒤로 불어오는 바람, 눈앞에 빛나는 태양, 옆에서 함께 가는 친구보다 더 좋은 것은 없으리."

에런 더글러스 트림블이라는 배우가 남긴 명언이야. 윤리 시간에 들었던 문장인데 가슴에 와 닿아 기억해두고 있었어. 참 좋은 말이야, 그렇지? 너도 이 말을 가슴에 새기면서 너의 옆엔 늘 내가 함께 걷고 있다는 걸 잊지 말아줬으면 좋겠어. 우리가 공부, 가족, 꿈 등의 많은 관계들 속에 얽혀 사는 만큼 앞으로
상처 받을 일도, 아픈 일도 정말 많을 거야. 하지만 이거 하나만 기억해. 너의 옆에는 내가 있다는 거.
우리에겐 울고 싶을 땐 단비를 내려주고 즐거울 땐 산들바람이 되어주는 서로가 있잖아. 길이 안보일 땐 서로를 믿으며 길을 만들어내면 되는 거고, 너무 지칠 때는 서로 기대어 그늘에 앉아 한 숨 자고 일어나면 돼. 서로가 있다면 그 어떤 길도 두렵지 않으니까.
남은 길도 항상 같이 걷자, 친구야.

 

 

안녕, 연희야. 이렇게 편지로 내 소식을 전하는 것도, 네 안부를 묻는 것도 참 오랜만인 것 같아. 항상 핸드폰으로 대화하다보니까 등 돌리면 다 잊어버리곤 했었는데 이렇게 한 자 한 자 정성스레 쓰다 보니 뭔가 마음이 둥실거리는 구름으로 가득 찬 느낌이야. 설레기도 하고 이 편지를 받은 네가 어떤 생각을 할 지 궁금하기도 하네. 사실 학교 가는 길, 문득 느껴지는 여름 냄새에 이렇게 편지를 쓰게 됐어. 녹음 짙푸른 여름 냄새, 너도 느껴지니? 매미 울음소리가 벌써부터 들리는 듯 하고 안개꽃, 맨드라미, 찔레꽃은 벌써부터 눈앞에 아른거려. 아직은 봄일 거라고 생각했는데 시간이 어찌나 빠른지 이젠 저 먼 곳부터 푸른 솔향기가 나. 여름이 오고 있다는 뜻이야. 그러고 보니 이번에 올 여름은 너와 내가 맞는 다섯 번째 여름이겠구나. 너와 내가 벗이라는 소중한 연을 맺은 지 벌써 5년째라는 거네. 사실 잘 실감이 나지 않아. 너와 내가 이렇게 오랜 시간 함께한 것도, 그 사이 우리가 엄청 많이 커버렸다는 것도.

 

 


봄, 노랗고 향기로운 숨을 가득 머금은 연희야,
아마 중학교 1학년 때였을 거야. 우리는 처음 입어본 교복이 정말 어색했어. 소매도 길고 치마도 무릎까지 내려와 누가 봐도 갓 초등학교를 졸업한 아이처럼 보였을 거야. 하지만 그만큼 풋풋했던 시간이 또 어디 있을까. 또 그만큼 사랑스러운 계절이 또 어디 있을까. 그 때 우리는 유행 따라 다 같이 앞머리를 내리기도 했어. 얼마나 우스웠었는지. 서로 얼굴을 보며 숨넘어갈 듯 웃었던 거 기억나니? 우리는 아침마다 지각할까봐 달리기도 참 많이 달렸어. 어쩔 수 없이 지각을 하게 되면 생활지도부 선생님께 정말 많이 혼났지. 하지만 혼나면서도 항상 즐거웠어. 아마 너와 함께였기에 그럴 수 있었겠지.
우리는 참 많은 걸 함께했어. 연분홍빛을 담은 벚꽃이 흩날리는 길을 함께 걷기도 했고, 시험이 끝난 뒤 무서운 놀이기구를 타러가기도 했지. 수련회에 가서 노을빛으로 물든 바다를 함께 보기도 했고, 같이 누워 잠을 청한 적도 있어. 2년 전 갑자기 네가 안양으로 이 동네를 훌쩍 떠나버린 바람에 전만큼 너와 이 많은 시간을 함께 하진 못하고 있지만 난 괜찮아. 네가 가까이 없는 순간에 한 번 더 네 빈자리를 생각하게 되고 너를 떠올리며 편지를 쓸 수 있으니까. 너의 갑작스런 이사가 오히려 우리를 더 돈독하게 만들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네가 없는 동안 이 동네, 그리고 나, 너는 참 많이 바뀌었어. 이사를 간 뒤 한 번도 이곳에 오지 못했으니 너도 이곳이 참 궁금할 거야. 여긴 매년 너와 함께 맞았던 벚꽃들이 져버렸어.
벚꽃은 참 예쁜데 너무 빨리 져버리더라. 꼭 우리의 중학교 시절이 떠올라. 가장 풋풋하고 아름다운 시기이지만 너무 빠르게 지나버리는 게 벚꽃과 많이 닮은 것 같아. 너도 그렇게 생각하지? 내년에는 이 벚꽃, 너와 같이 예전처럼 맞이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 또 너랑 하교할 때면 꼭 하나씩 물고 다녔던 아이스크림, 그걸 팔았던 동네 마트는 이제 편의점으로 바뀌었어. 주인아주머니도 정말 친절했는데, 많이 아쉽더라. 나랑 너도 참 많이 컸지. 내 키는 이제 엄마보다 커. 이젠 제법 꾸밀 줄도 알게 됐고 교복 입는 것쯤이야 식은 죽 먹기가 되어버렸어. 공부도 더 열심히 하고 있고 시간이 지날수록 내 꿈이 조금씩 두렷해져가는 게 느껴져. 그리고 이젠 예전처럼 달리지 않아. 지각하지 않기 위해 조금 더 일찍 집을 나서곤 해. 물론 아직도 아슬아슬할 때가 많지만. 이렇게 나는 많이 변했어. 너도 많이 변했겠지? 변했다는 건 나쁜 게 아니야. 그만큼 많이 자랐다는 거고 그만큼 성숙해졌다는 거니까.
그 봄, 우린 참 싱그러웠던 것 같아.

-원문은 글나라넷(www.gulnara.net)에서 볼 수 있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