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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회 글나라독서감상문대회 - 고등부 전대산
제 43호 소식지

조엄의 일본기행을 읽고 

 

고등부 전대산

 

 

 
우리가 살아가는 세계에는 고전이라는 이름으로 불리우는 책들이 수없이 많지만 오천 년의 유구한 역사를 자랑하는 우리에게도 다른 나라 못지않은 고전이 있다는 것은 내 가슴을 뿌듯하게 만들어 주기에 충분했다.
사실 요즈음은 어떻게 된 일인지 우리나라의 문학 작품보다는 다른 나라의 문학 작품이 우리의 서점을 가득 채우고 있는 것이 보통인데 풍요로운 결실의 계절에 민족 문화 추진회가 발행한 조선의 일본 기행을 읽으며 나는 우리 민족의 높은 기상과 학문을 중시한 우리 조상의 생활 모습에 커다란 감명을 받았다.
나는 이 책을 읽기 전까지만 해도 조엄이라는 사람이 누구인지 알지 못했다. 그저 어디선가 한 구절 얼핏 주워들은 우리나라 최초로 감자를 들여왔다는 것이 내가 조엄에 대해 알고 있는 짧은 지식의 전부였다,
하지만 일기체로 쓰여진 이 책을 읽으며 우리나라와 일본의 사신이 태조 때부터 왕래가 있어 왔음을 알았고 해상 교통이 원활하지 못했던 조선 시대에 우리나라를 대표하며 일본에 통신사로 갔다 오신 분들의 힘든 노정을 머릿속으로 더듬어 볼 수 있었다.
지금으로 말하면 외교사절의 대표가 되어 원가치가 관백이 된 것을 축하하기 위해 일본으로 떠나게 된 조엄은 전하께 하직 인사를 드리고 먼 길을 떠나는데 사신이 지나는 곳은 피폐가 심했다는 것으로 미루어 보아 외국은 물론 우리나라에서도 사신을 접대 하는데 어려움이 많아 보였다.
그래서 그리 많지 않은 사람들의 배웅을 받으며 한강을 건넌 조엄은 부산을 향해 길을 가면서 거치는 곳의 수령으로부터 후한 대접을 받는데 그 주된 원인은 험한 바다를 건너는데 따르는 위험 부담을 안고 있었기 때문인 것 같았다.
물론 지금에야 이웃 나라 일본을 배나 비행기를 이용해 단시간에 손쉽고 안전하게 오갈 수 있지만 조선 시대만 해도 일본이 섬나라이기 때문에 성능도 좋지 않은 무동력선을 타고 험한 바다를 건너야 했으니 그것은 바다에 목숨을 내맡긴 위험한 일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우리 조상들은 역시 신비로서의 위엄과 앞일을 예견하는 능력이 있어 보였다. 오백 명에 이르는 사신 일행에서 조금이라도 잘못이 있는 사람은 잡아다가 벌 주어 헤이해지는 기강을 바로 잡고 일본과 가장 가까운 변방을 중시해야 한다는 뜻으로 부산 첨사를 높이 생각해야 한다는 것은 나라의 장래를 염려하는 조임의 충성심의 발로처럼 보였다.
언제나 나라를 염려하고 조상을 뜻을 먼저 생각한 조엄은 국서를 받들고 좌수포로 향하지만 심한 파도에 배가 흔들려 멀미를 하는 사람들을 지켜보며 얼마나 많은 갈등을 겪었을까? 하지만 조엄이 일본이라는 낯선 곳을 이해 할 수 있게 된 것은 서영응이 만든 식파국적이란 책이었음을 상기시켜 볼 때 사람들이 남긴 책이나 기록이 먼 훗날을 살아갈 후손들에게 얼마나 소중한 나침판이 되는가를 깨닫게 되었다.
나는 조엄의 일본 기행에서 그 당시 일본인들의 우스꽝스러운 모습을 떠올리며 우리보다 훨씬 낮은 문화수준을 갖고 살아온 사람들이 오늘날 우리보다 잘 사는 강대국이 된 이유가 도대체 무엇인지 찾아내고 싶었다. 뒤통수의 머리 만을 남기고 수염까지 깎아 버리고 바지도 입지 않고 버선도 신지 않던 그들이 불과 100여년 뒤에 우리나라를 다시 침략할 힘을 기를 수 있었던 열쇠는 어디에 숨겨져 있었을까?
나는 이 책을 읽으며 마음이 착잡했다. 사신을 실은 배가 심한 풍랑을 만날 때는 그렇잖아도 작은 가슴을 잔뜩 조여야 했고 우리가 특별히 잘못한 일도 없으면서 30만냥 상당의 예물을 건네주고 그들로부터 겨우 3만냥의 예물을 받는다는 사실이 쉽사리 이해되지 않았다.
조엄이 일본으로 사신이 되어 떠나기 얼마전 임진왜란을 일으켜 우리 땅을 짓밟고 우리 동포들을 살상한 그들은 어찌 보면 우리의 철천지 원수가 분명한데도 그런 원수와 같은 사람들을 우리나라 사람들이 먹여 살린다는 것은 이 책을 읽어가는 내가 생각할 때 그야말로 분통이 터질 노릇이었다.
그러나 일본 사람들이 우리나라 사신을 접대하는 것이 소홀하지 않았다는 것이 조금은 위안이 되었다. 우리나라 사람들이 예의가 바르기로 알려진 까닭에 무사히 예를 치르기 위해 연습 하느라 해가 저물어서야 나타난 도주라든지 우리나라 사람들의 글씨를 받으면 복이 찾아 든다는 이야기는 우리 민족의 정신세계를 존경하는 일본인의 마음처럼 보였다.
하지만 일본 사람들은 유난히 뽐내기를 좋아했던 모양이다. 처마 안에 새로 만든 조총과 자포를 벌여 놓기도 하고 쉬운 길을 놔두고도 굳이 험한 길로 우리의 사신을 인도하여 자신들의 힘을 은근히 자랑하는가? 하면 우리보다 먼저 수차를 이용하여 물을 성안으로 보내고 물레방아로 곡식을 찧는 것과 길을 정자 모양으로 만들고 화제가 일어나면 소방수로 쓰기 위한 바닷물을 불러들이게 한 도랑은 우리보다 한걸음 앞선 선진기술의 본보기였다.
이밖에도 조엄의 일본 기행 속에는 우리 민족의 애국심이 군데군데 나타나 있었는데 치목을 우리 것으로 사용한 거라든지 파괴된 우리 배의 조각을 일본에 둘 수 없다고 하여 부산으로 되돌려 보낸 것은 남에게 의존하기 싫어하는 조상들의 굳은 성품과 우리 것을 아끼고 사랑하는 마음을 짐작하게 만들었다.
길가에 늘어 서 있는 나무 한 그루에도 뿌리가 있다면 우리에게도 훌륭한 문화와 전통이 숨 쉬고 있듯이 서로의 실리 추구로 인해 나라 사이의 교류와 협력이 더욱 필요해지는 이 시기에 내가 읽어본 이 책은 이웃 나라 일본과 우리나라의 지난날을 다시 한 번 생각하게 만들었고 어디에서나 당당하고 물러섬이 없었던 충신 박재상의 모습 속에서 한민족의 높은 기상을 발견할 수 있었다.
이제 세계 속에 발전을 거듭해 나가는 우리는 지나온 역사 속에 숨겨진 한일관계 복원의 열쇠를 찾아 교역과 협력을 증진하고 남의 것이 아닌 우리의 것을 진정 아끼고 발전시켜 나갈 때 우리 조상들이 밝혀온 문화의 횃불을 더욱 밝게 켤 수 있으리라 굳게 믿으며 우리 고전 문고를 만들어 나의 가슴에 한민족의 긍지와 자긍심을 새롭게 일깨워 주신 여러 선생님들께 고개 숙여 감사의 인사를 전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