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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회 독서감상문대회 수상작 - 일반부 현애순
제 43호 소식지

가슴 속에 묻어둔 한마디-신경숙의 "엄마를 부탁해"를 읽고- 

 

일반부 현애순

 

 

책 제목을 처음 접한 순간 가슴이 철렁했다. 갈수록 쇠약해지시는 어머니를 몇 달 동안 가슴 졸이며 간호해왔던 터라, 이 책의 제목만 보고도 가슴 한 구석이 시큰하게 아려 오는 것이었다. 하루가 다르게 몸이 말을 듣지 않는다고 한숨 섞인 푸념을 늘어놓으시는 내 어머니의 모습이 왠지 낯설고 서글프게 느껴질 무렵, 나는 신경숙의 소설 "엄마를 부탁해"를 만났다.
"엄마를 부탁해"는 평생 가난과 싸우며 가족을 위해 헌신해 온 한 어머니의 안타까운 실종을 그린 소설이다. 따라서 소설에는 자식과 남편을 위해 자신의 모든 것을 소진시킨 한 어머니의 삶의 궤적과 어머니의 실종 이후 남겨진 가족들의 시련과 아픔이 적나라하게 드러나고 있었다. 이는 어머니를 잃고 괴로워하는 자식들과 아내를 잃고 실의에 빠진 남편의 회상을 통해 드러나는데, 신경숙은 그녀 특유의 담담한 문체로 그들의 절절한 이야기를 생생하게 풀어내고 있었다.
이야기는 생일을 앞두고 남편과 서울에 올라온 38년생 엄마(박소녀)가 지하철을 타려다 인파에 밀려 남편의 손을 놓치면서 시작된다. 가족들은 실종된 엄마의 흔적을 찾아 고군분투하지만 별다른 성과를 거두지 못한다. 엄마가 사라진 후, 가족들은 엄마의 자리가 얼마나 컸는지 새삼 실감하게 되고, 엄마는 그 어떤 존재보다도 소중한 존재로서 부각된다. 소설 속 어머니는 어렵고 힘든 시기를 억척스럽게 살아오느라 여성으로서의 삶을 포기해야 했던 이 땅의 모든 어머니들을 대변하고 있기에 책의 내용이 그다지 낯설지 않게 느껴졌다. 한 평생 가족을 위해 희생해 온 어머니의 삶이 비단 소설 속 어머니에 국한된 이야기는 아닐 것이기 때문이다. 나 역시 홀로 6남매를 키우느라 한 평생 고생만 하신 내 어머니의 모습이 떠올라 소설을 읽는 내내 가슴이 먹먹해져왔다.
각 장은 전단지와 광고를 통해 엄마를 찾아 헤매는 자식들과 남편, 그리고 엄마의 시선이 각각 병치되어 전개된다. 작가는 보편적인 서술방식과는 다른 시점 전개를 구사하는데, 특히 ‘너,’ ‘그,’ ‘당신’으로 호칭되는 딸, 아들, 남편의 시점 전개는 다소 상투적이고 평면적일 수 있는 이야기를 특별하고 입체적인 형태로 변모시키는 기능을 하고 있었다. 이러한 서술 기법은 등장인물 저마다의 행동과 심리상태를 다각적으로 보여주는 효과를 발휘하며, 이로서 독자들은 작중인물과 함께 호흡하고 느끼는 공감대를 형성하게 되는 것이다. 이처럼 작가는 시점의 전환을 통해 그동안 등장인물들이 경험한 엄마에 대한 기억을 하나씩 복원시켜 나간다.
그러나 이러한 과정에서 가족들은 충격적인 사실에 직면한다. 그동안 누구보다도 엄마를 잘 안다고 여기며 살아 온 가족들이 정작 엄마에 대해 제대로 아는 것이 별로 없다는 사실과 그런 엄마를 너무도 오랫동안 무시하고 방치해왔다는 사실이다. 엄마의 흔적을 쫓아 헤매는 동안 가족들은 자신들의 이기심으로 인해 엄마를 얼마나 무시하고 소외시켜 왔는지를 비로소 인식하게 된 것이다. 그들의 삶 속에서 엄마는 이미 오래전에 잊혀진 존재였다. 작가는 말한다. ‘잊다’라는 말 안에는 이미 ‘잃다’라는 의미가 내포되어 있다는 것을……. 기억 저편에서 잊어버린 엄마를 환기시키기 위해 작가는 엄마의 실종이라는 극단적인 상황을 제시했던 것이다. 그동안 받는 것에만 익숙한 나머지 엄마에게 고맙다는 말, 사랑한다는 말 한마디 제대로 한 적 없던 그들, 엄마의 외로움과 고통을 모른 척 외면해 왔던 그들이다. 이제 엄마의 빈자리는 상실의 아픔과 함께 자책과 후회라는 더 큰 고통을 수반하게 되었다.
그러나 이처럼 이기적이고 무책임한 그들이지만 그들을 비난할 수도 조롱할 수도 없는 내 자신을 발견하고는 이내 숙연해졌다. 소설 속의 엄마는 분명 그녀의 엄마, 그의 엄마, 혹은 그의 아내였으나 기실 우리의 엄마이자 책을 읽고 있는 ‘나’의 엄마임을 부정하기 힘든 까닭이다. 작중 화자의 이야기는 어느새 우리의 이야기 곧 ‘나’의 이야기가 되어 가슴 한 켠을 무겁게 짓눌렀다.
엄마 실종 후, 엄마를 향한 그리움과 자책감 사이에서 괴로워하던 딸을 작가는 ‘너’라 부른다. 나가 아닌 ‘너.’ 이는 수많은 독자들을 향한 작가의 날카로운 일침으로 읽힌다. 어머니의 사랑과 희생을 지극히 당연한 것으로 여기던 ‘너,’ 어머니의 질곡의 삶을 보면서 자신은 그렇게 어리석게 살지 않겠다고 다짐했던 ‘너,’ 그러면서도 어머니의 욕구와 고뇌에는 잔인하리만큼 무관심했던 ‘너.’ 그렇다. 여기서 작가가 말한 ‘너’는 바로 이 책을 읽는 우리, 즉 ‘나’인 것이다. 따라서 실종된 엄마를 향한 가족들의 그리움과 간절한 외침은 어느새 내 어머니를 향한 그리움과 외침이 되어 메아리쳤다.
그러나 작가의 시선은 전통적 가치에 함몰된 어머니의 삶을 단지 묘사하는 데 있지는 않은 것 같다. 소설 안에는 어머니의 숨겨진 욕구와 고뇌가 어머니의 시점을 통해 확연히 드러나기 때문이다. 직접 엄마가 화자가 되어 솔직하게 자신의 이야기를 풀어내는 4장은 그런 점에서 매우 신선한 반전을 주기에 충분했다. 엄마의 이야기는 자식들의 기억과 합치되는 부분도 있었지만, 가슴 속에 제 3의 남자를 품었던 것처럼 전혀 예상하지 못한 파격적인 내용도 담겨 있었던 것이다.
가족들이 기억하는 엄마의 모습과 실제 엄마의 모습에는 많은 차이가 있었다. 가족들이 기억하는 엄마는 가족을 위해 희생하면서 오직 가정이라는 테두리 안에서 행복을 찾는 전통적인 어머니 상을 지닌 분이었으나, 정작 그들의 엄마는 가정이라는 굴레에서 벗어나 새처럼 자유로운 삶을 꿈꾸고 있었다. 그들은 자신들의 엄마도 한때는 누군가의 딸이었으며 꿈 많은 소녀였다는 사실을 망각하고 있었고, 엄마도 외롭고 지칠 때 누군가 기댈 사람이 필요했다는 사실을 알지 못했다. 그동안 오로지 자신들의 관점으로 엄마를 이해하고 평가해 왔던 것이다.
이 책을 읽다 보니 문득 궁금해졌다. 나는 내 어머니에 대해 얼마나 알고 있을까? 혹시 내가 기억하고 있는 내 어머니의 모습이 실제와는 전혀 다른 것은 아닐까? 내 어머니도 소설 속 엄마처럼 고단한 삶을 훌훌 털어버리고 한 마리 새가 되어 훨훨 날아가고 싶었던 것은 아닐까? 그동안 나도 어머니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채 나만의 착각 속에 머물러 있던 것은 아닌지 걱정이 되었다. 항상 어머니에게 기대며 살아왔으면서도 정작 어머니가 나를 필요로 할 때 나도 모르게 밀어내지는 않았는지……. 소설 속 자식들처럼 뒤늦은 후회 속에 고해의 시간을 보내지 않기 위해서라도 더 늦기 전에 가슴 속에 묻어두었던 말을 꺼내야겠다. 어머니, 고맙습니다. 그리고 사랑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