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단법인소개

> 글나라소식 > 글나라 소식지
제4회 독서감상문대회 일반부 우수상 - 박서현
제 34호 소식지

왜 주인공은 모두 길을 떠날까?
 (부제 : 내 스스로 떠날 수 있는 용기는 어디서 나올까?)


작은언니가 울먹이며 자다 깬 나를 안는다.
연신 미안하다며 큰언니가 핑크색 보자기를 내 허리에 묶어 준다.
올 것이 왔구나!
뒤도 돌아보지 않고 언니들이 다니는 초등학교를 지나 구덕운동장 프로스펙스 매장까지
 단숨에 걸어갔다.
도대체 어떻게 생겨 먹었길래, 인제야 나를 찾아왔을까? 왜 나를 다리 밑에 버려뒀는지 묻고 싶었다.
하지만, 나를 다리 밑에 버렸던 이는 오지 않고 내가 걸어왔던 길 위로 상기되어 나를 부르는 할매가 손을 휘저으며 달려온다.
할매가 나를 발견하면 안 보내 줄 것 같아서 난 몸을 틀어 최대한 숨어보았지만, 이미 할매는 내 팔목을 잡고 가뿐숨을 내쉰다.
그날 장난이 장난이 아니게 될 뻔 한 사건으로 두 언니들은 할매한테 혼 줄이 났고,
그동안 늘 나를 괴롭혔던 ‘다리 밑에서 주워왔다’라는 말은 금기어처럼 더 이상 나를 괴롭히지 않았음에도 몇 년이 더 흐르기까지 난 다리 밑에서 주워 왔다라는 말을 이해하지 못하고 문득문득 엄마 얼굴, 아빠 얼굴을 쳐다보며 어디가 닮았지! 하고 헷갈려 했으니,,,
40이 넘은 언니들이 이번 추석 술안주에도 어김없이 등장시켜 깔깔 거려도 나로서는 할 말이 없다.
이렇게 책속의 주인공에 비하면 이야기 거리라 할 것도 없이 나의 첫 길 떠남은 장난스럽게 끝났고, 청지네 부모만큼은 아니지만, 보수적인 아빠의 통금제한으로 외박하번 못하고 학창시절을 보냈던 것 같다.
갈수록 험해지는 세상에 책속의 주인공들처럼 밖으로 내몰았다가는 그야말로 늑대들에게 밥을 던져주는 겪이 되지 않을까 하고 생각하겠지만, 솔직히 내년이면 초등학교에 들어가는 딸아이 슈퍼에 우유 심부름 못 보내는 나로서는 기생하며 사는 지네나 버섯의 삶에 비유하는 작가의 말을 기분나빠할 처지가 못 된다.
그렇다고 학원 끝날 시간에 맞춰 버스 정류장에서 어김없이 서 계셨던 아빠가 눈꼽 만큼도 원망스럽다거나, 결정을 잘 못하는 내가 장인어른의 딸 사랑이 지나쳐 생긴 장애라 여기는 남편에게 목에 핏대를 세우며 아빠의 사랑이 얼마나 나에게 소중한지를 토해낼 정도로 아빠의 자식 사랑 법에 대한 내 생각은 지금도 확고하다.
아빠의 지나친? 사랑이 지금 나에게 지나치지 않게 느낄 수 있었던 이유는 바로 엄마다.
감정에 충실하고 다소 여성스러울 만큼 꼼꼼한 아빠 옆에는 늘 우리 4형제를 방목하는 엄마가 계셨다.
어릴 때. 내가 다리 밑에서 주워왔다 라는 말을 철석같이 믿었던 것 중에 지금도 생생한 기억하나를 이야기하자면, 일주일에 한번 두 언니와 나를 데리고 목욕탕에 갈 때면, 늘 엄마는 자신의 몸의 때를 벗기느라 우리들은 안중에도 없었다..
옆집 은영이는 머리부터 발끝까지 은영이 엄마가 공주 공주를 연발하며 살갑게 목욕하는데,
니 때는 니가 밀어라! 라며 단호한 엄마를 넘어 속옷을 던져주며 직접 빨라고 하는 계모도 그런 계모가 없었다.
밥 먹기 싫다고 떼를 써도 두 번 밥 먹어라는 소리 없이 밥상을 들고나가시고, 은영이 피아노 다닌다고 자랑할 때 사흘밤낮을 울고 단식을 해도 언니들도 못 배운 피아노를 나에게만 특권을 줄 수 없다는 이유로 결국 안 보내주셨던 그 단호함과 지독함을 아빠도 이길 수 없으셨으니,,,,
그래도 엄마에게 단 한번도 ‘숙제해라, 방 정리 라. 일찍 들어 온나, 성적이 왜이래’라는 잔소리는 안 들었던 같다.
아빠 피가 더 많이 섞여있는 나에게 두 아이를 키우면서 일어나는 일들을 하나에서 열까지 예민하게 반응하며 고민스러울 때, 엄마의 느긋함과 대범함이 가끔 부러워지면서 그럴수 있는 게 얼마나 큰 용기인가를 생각하게 한다.
숲이든 집밖이든 길을 떠났던 수많은 옛이야기 주인공 못지않게 인생의 숲에 나침반 같은 부모가 있다는 것은 굳이 여행을 떠나고 혼자 길을 나서지 않아도 헤쳐 나갈 수 있는 힘이 된다는 것을 이 책과 나의 부모님을 통해 또 한 번 확신하게 된다.
나의 유년을 부모의 나침반으로 살았다면 앞으로의 나의 삶은 수많은 책들이 나의 이정표가 되어 인생 숲을 헤쳐 나갈 것 이다.
그리고 간절히 바라 건데 우리 두 아이 또한 부족한 나침반인 나를 넘어서는 자신만의 숲을 옛이야기 주인공처럼 지혜롭게 잘 헤쳐 나가 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