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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회 글나라 편지쓰기 대회 중등부 최우수상 - 김수현
제 24호 소식지

사랑하는 외할머니께

할머니 안녕하세요. 할머니의 큰 공주, 큰 강아지, 큰 손녀 수현이에요.
할머니께 편지를 쓰는 게 제 기억으로는 이번이 처음인 것 같아요. 16년간 감사한 일 밖에 없는 할머니께 편지 하나 안 쓰다니, 정말이지 나쁜 손녀네요.

어릴 적부터 할머니와 같이 살고, 지내온 오빠에 비해 저는 할머니와 보내고, 같이 지내온 시간이 너무나 짧은 것 같아요. 그래서인지, 저의 내성적이고 소심한 성격 때문인지는 모르겠지만 할머니께 예쁘고 행동하고, 살갑게 대하고, 애교도 잘 부리는 오빠와는 달리 저는 할머니께 애교는커녕 말 한마디도 잘 건네지 않지요. 엄마, 아빠, 오빠, 그리고 저 이렇게 네 식구가 주말에 시간을 내어 할머니 댁에 찾아가는 날엔 집에 들어설 때 인사, 나올 때 작별 인사 외에는 주고받는 대화는 거의 없고 폰만 들여다보는 경우가 대다수, 아니 늘 그렇지요. 저를 제외한 가족들 엄마, 아빠, 오빠는 할머니께 농담도 잘하는데 이상하게 전 그게 잘 되지 않아요. 분명히 저에게 할머니는 가족인데 말이에요.

바보 같을지 모르겠지만 할머니와 친한 오빠, 할머니께 친근하게 대하며 ‘할매’ 라고 사투리로 편하게 부르는 친구들을 보면 가끔은 부럽기도 해요. 저도 할머니께 그렇게 하고 싶어서 할머니 댁 가기 전에 ‘오늘은 할머니께 농담도 해봐야지’ 하고 속으로 다짐도 해봤지만 막상 할머니 댁에 가면 그러지를 못 하겠어요. 쑥스러워 하는 성격 때문일까요? 아니면 표현을 못 해서일까요.

가끔 부모님이 집을 비우시고 저 혼자 집에 있어야 할 때 면 늘 할머니께서 오셨죠. 어릴 땐 마냥 철없이 ‘불편하고, 혼자 있는 게 더 좋은데. 나 혼자 잘 있을 수 있는데’ 하면서 그리 반갑게 반기지 않았던 것 같습니다. 하지만 그건 다 어릴 적 이야기, 몇 년이나 지난 이야기.

앞서 말했듯이 할머니도 가족이라는 생각이 커졌습니다. 커진지 오래 됐지요. 그리고 제가 사랑하는 사람들 중 한 분 이십니다. 그렇지만 이상하게 할머니께 만은 말을 선뜻 쉽게 하지 못 합니다. 심지어 ‘진지는 드셨어요? 같이 먹어요.’ 라던가 ‘안 힘드세요? 도와드릴 거 없어요?’ 라는 말조차도 쉽게, 선뜻 나오지 않고 목구멍에서 맴돌고 있습니다.이런 간단한 말조차 못하니 할머니와 앞으로 인사말조차도 못하지는 않을까, 할머니와 정이 사라지면 어떡하지 하는 정말 바보 같은 고민과 걱정도 했었습니다.

하지만 이 편지를 빌어 앞으로는 할머니께 사랑한다는, 감사하다는 표현도 잘하고 공부도 잘하는 손녀, 영어 선생님이 될 거라는 오빠를 뒤이어 미술 선생님이 되고 싶은 손녀, 대학교 졸업하고 직업도 가진 그런 모습의 저를 할머니께 꼭 보여드리고 싶어요. , 월급도 많이 벌어서 할머니께 용돈도 쥐어드리고 유럽처럼 멋진 곳으로 여행도 보내드릴 거랍니다. 그러니 적어도 그때까지 아니, 그 후로도 쭉 오래 곁에 있어주세요.

어릴 땐 할머니와 통화하며 꼭 끊기 전에 아무렇지 않게 했던 말, 하지만 지금은 하기 쑥스러운 말.

할머니, 사랑해요.


2015 4 3
사랑하는 할머니의 손녀 김수현 올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