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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도한 일반화의 오류
제 98호 소식지
  조용하고 숫기 없는 나는 어릴 때부터 성격이 내성적이라는 이유로 ‘소심하겠네’라는 이야기를 많이 들었다. 나는 
겉으로 표현은 하지 않았지만 매번 속으로 억울해했다. 왜 내성적인 성격과 소심함은 항상 세트로 따라다녀야 하는 건지,
나를 제대로 알지도 못하면서 먼저 판단하고 선을 그어버리는 건지, 외향적인 사람도 소심한 면은 있을 텐데 왜 소심의 
전유물은 내성적인 사람이 되어야 하는지 그 이유를 모르겠다고 생각하며 말이다.

  과도한 일반화는 편견을 갖게 한다. 나는 소심하지 않지만 내성적=소심이라는 일반화가 나를 소심한 사람으로 만드는
것처럼 말이다. ‘남자는 파란색, 여자는 분홍색을 좋아한다’, ‘동양인은 수학을 잘한다’, ‘이주노동자는 위협적이다’ 등의 
일반화는 또 다른 편견을 낳는다. 세상의 모든 여자가 분홍색을 좋아하는 것은 아니며, 동양인이라고 해서 반드시 수학을
잘하는 것도 아니다. 
  
  어느 사회나 마찬가지겠지만 우리 사회에서도 편견으로 인해 많은 이슈가 발생한다. ‘난민’, ‘외국인’, ‘보수’, ‘진보’, 
‘페미니즘’ 등의 키워드를 판단의 기준으로 세워 옳고 그름을 덧씌운다. 그 집단의 개인이 어떤 사람인지에 대해서는 
관심이 적다. 개인의 특성은 고려하지 않고 그 집단에 속해있다는 이유만으로 평가받는다. 우리 뇌는 효율성을 추구하기
때문에 주변 자극, 사람, 집단을 무의식적으로 범주화하고 빠르게 판단한다고 한다. 갑작스러운 위협과 공격에서 살아
남아야 하는 시대에는 이러한 정보처리 방식이 효율적이었으나 지금은 그렇지 않다. 

  편견은 상대의 참모습을 볼 수 없게 한다. 누군가를 판단해야 하거나, 나도 모르게 상대를 특정한 시선으로 바라보려고
할 때 잠깐 멈추고 생각해보자. 혹시 내가 섣불리 결론 짓는 것은 아닐까? 일부만 보고 상대의 모든 것을 안다고 생각하는
것은 아닐까? 라고 말이다. 우리 중 어느 누구도 한 단어로 정의할 수 있는 사람은 없다.


Pixabay로부터 입수된 Ylanite Koppens님의 이미지 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