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가족 책읽기'는 부모와 아이들이 서로의 마음을 이해하는 데 큰 도움이 된다. 한 가족이 거실에 모여 책을 읽고 있다. 〈한겨레〉 자료사진 |
| |
|
|
“5살 아이를 키우는 엄마입니다. 외동아이이기도 하고 요즘 한창 고집이 세질 때라, 배려나 양보 등 사회성 발달에 필요한 책들을 읽어 주려고 합니다. 책을 추천해 주세요.” 한 어린이책 관련 인터넷 사이트 게시판에 올려진 글이다. 요즘 학부모들이 자주 찾는 사이트에서는 이런 글들을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다. 아이의 상황에 맞는 책을 구하는 어른들이 그만큼 많다는 얘기다.
이야기에 공감하며 위로받는 효과 ‘톡톡’
부모·자녀 서로 마음 읽으면 ‘말길’도 열려
귀 기울이되 어른 생각 강요는 마세요
전문가들은 아이의 바른 성장을 돕고 상처난 마음을 어루만져 주는 데 책만큼 좋은 게 없다고 입을 모은다. 꼭 전문가의 말을 빌리지 않더라도, 책을 읽으면서 가슴에 맺힌 응어리가 풀어지거나 자기의 속마음을 들킨 듯한 느낌을 가져 본 경험은 누구에게나 한 번쯤 있었을 터이다.
■ 책읽기의 ‘치유’효과 = 어린이책 전문가인 조월례 경민대 독서스페셜리스트교육원 초빙교수는 “어린이들은 현실 속에서 알게 모르게 억눌리고 상처를 받기 쉬운데, 책 속에서 자기의 처지와 비슷한 상황과 사람을 만나면서 공감하고 위로를 받곤 한다”고 말했다. 어른들이 드라마를 보면서 ‘나도 저런 때가 있었지.’라거나 ‘나도 저래 봤으면….’ 하는 생각을 갖는 것과 마찬가지라는 얘기다.
독서지도사인 이기숙 부산 ‘꿈꾸는 글나라’ 어린이도서관장도 “문학은 줄거리가 있고 구체적이기 때문에 아이들이 음악이나 미술 등 다른 예술에 비해 좀 더 쉽게 작품 속으로 들어갈 수 있다”고 말했다.
그는 “아이들은 작품 속 이야기와의 동일시 과정을 통해 카타르시스를 느끼게 되고, 등장인물을 통해 거울을 비추듯이 자신을 돌아보면서 행동모델을 제시받기도 한다”고 설명했다.
이런 ‘치유적 책읽기’는 자발적인 독서 욕구를 북돋워 주기도 한다. 서울 남산도서관 주상수 사서는 “책을 통해 마음을 위로받은 경험을 한 아이는 책에 대해 좋은 느낌을 갖게 되고, 기쁜 마음으로 책을 찾아보게 된다”고 말했다.
■ 책을 통한 마음 읽기 = 책은 부모와 아이 사이에서 빚어지는 문제들의 근본 원인인 ‘막힌 말길’을 열어 주는 구실도 한다. 독서치료 지침서 〈열려라 참깨〉의 저자인 김경선 하제독서치료연구소장은 “소통이 제대로 되려면 부모와 아이가 자신과 상대방의 마음을 제대로 읽어야 하는데, 책을 읽다 보면 서로의 마음을 읽는 데 큰 도움이 된다”고 말했다. 김 소장은 “특히 아이의 상처는 부모의 잘못된 태도에서 생기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부모가 먼저 자기의 마음을 들여다볼 필요가 있다”고 조언했다.
예를 들어, 김미혜 시인의 동시집 〈아기 까치의 우산〉에 실려 있는 동시 ‘말이 안 통해’를 보자.
“엄마, 토끼가 아픈가 봐요. / 쪽지시험은 100점 받았어? / 아까부터 재채기를 해요. / 숙제는 했니? / 당근도 안 먹어요. / 일기부터 써라!”
아이는 토끼가 아프다는 것을 알려 주고 싶은데, 엄마는 들어 주지 않고 자기 말만 하는 상황을 담고 있다.
김 소장은 “이 동시를 들려 주면, 부모들은 아이들 말을 제대로 듣고 있지 않은 자신을 보게 되고, 아이들은 자기 마음이 잘 반영된 모습에 웃음을 짓는다”고 설명했다. 만일 자기가 만들어 놓은 틀에 아이를 맞추려고 해 아이를 힘들게 하는 부모라면, 엄마의 비뚤어진 기대 때문에 학원을 전전하며 고통스러워하는 아이의 처지를 다룬 동화 〈노래하지 않는 새〉를 읽다 보면 책 속에서 자신의 모습을 발견하고 되돌아볼 수 있다.
■ 가족이 함께 책을 = 꼭 무슨 문제가 드러나지 않았더라도, 온 가족이 같은 책을 읽고 이야기를 나누는 ‘가족 책읽기’는 서로의 마음을 읽고 이해하는 데 큰 도움이 된다.
김 소장은 “가족 책읽기를 하다 보면 그동안 미처 몰랐던 아이의 고민도 자연스럽게 파악할 수 있다”고 말했다. 이때 아이가 반복적으로 읽는 부분이나 읽기 싫어하는 부분이 뭔지를 눈여겨보는 것도 아이의 마음을 읽는 실마리가 될 수 있다.
아이와 함께 책을 읽을 때 가장 주의해야 할 것은 어른의 생각과 가치관을 강요해서는 안 된다는 점이다.
조 교수는 “아이들은 어른들이 하찮게 여기는 것에서 카타르시스를 느낄 수 있다”며 “어른들이 기대한 변화가 왔는지 확인하려 들지 말고 아이가 입을 열 때까지 기다려 주고 아이의 말에 귀 기울여 줘야 한다”고 강조했다.
독서치료를 위한 상황별 도서목록은 한국도서관협회 홈페이지(www.kla.kr) 공개자료실에서 볼 수 있다.
독서·글쓰기교육 포털사이트인 글나라(www.gulnara.net)의 ‘책의 선택’ 메뉴 중 ‘이럴 땐 이런 책’에서도 한국독서치료학회 등의 독서치료자료 목록을 볼 수 있다.
가족과 함께 ‘치유적 책읽기’를 하고 싶다면 공공도서관의 도움을 받는 것도 좋다. 서울 남산도서관의 경우, 매주 목요일 오후 2~5시 독서상담실에서 사서와 함께하는 독서치료 체험 프로그램을 진행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