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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9회 글나라백일장대회 일반부 우수상 '인간의 존엄이 어디에서 오는가'
제 90호 소식지
일반부 최**

인간의 존엄이 어디에서 오는가, 《바르톨로메는 개가 아니다》 by 라헐 판 코에이

이 책은 스페인의 대표 화가 벨라스케스의 '시녀들'이라는 그림에서 영감을 얻어 작가의 상상력을 발휘하여 쓴 팩션이다. 
이 그림은 스페인의 국왕 펠리페 4세의 공주 마르가리타와 시녀들, 시동들이 궁중의 화실을 찾은 장면을 그린 그림으로 
오른쪽 아래의 ‘개’를 보고 이 작품의 주인공 척추 장애인 (‘꼽추’가 차별어인 것 같아서 중립적인 용어를 씀) 바르톨로메를 
떠올렸고, 바르톨로메가 마르가리타 공주의 ‘인간 개’ 노릇을 했다는 설정을 이용했다.

*

바르톨로메는 스페인 시골 지방에 살고 있으며 여러 명의 남매가 있는데 그중에 유일하게 장애인으로 태어났다. 그의 아버지는 
도시로 나가 마부로 출세하여 가족을 모두 데리고 도시로 가려고 하는데 바르톨로메만 시골에 남겨두고 가려고 한다. 그는 장애인 
아들에 대한 애정 없어, 아들을 짐짝 취급하였을 뿐만 아니라, 당시 도시에서 장애인들이 어떤 취급을 받는지 너무 잘 알기 때문이다. 
그러나 바르톨로메는 필사적으로 따라가려고 한다. 어머니와 형, 누나도 대놓고 아버지에게 대항하지는 못하지만, 바르톨로메를 
데리고 하려고 한다. 사람들의 눈에 띄지 않겠다는 약속을 받고서야 드럼통 속에 가두고 수레를 끌고 출발한다.

이렇게 시작된 도시 생활. 빈곤하지만, 형과 누나는 새로운 생활에 적응해간다. 많은 새로운 것을 보고 매료된다. 형은 똘똘하고 
명석한 바르톨로메에게 공부할 기회가 있다며 엄마와 바르톨로메를 설득한다. 독실한 기독교 신자인 엄마는 남편을 거스를 수는 
없지만, 바르톨로메의 형과 누나의 열정, 그리고 늘 안쓰럽고 불쌍한 바르톨로메에 대한 마음으로 마지못해 허락한다. 수도원의 
수사님에게 일주일에 두 번씩 드럼통 속에 바르톨로메를 넣어 가서 글을 배울 수 있게 한다. 수사님도 수도원장의 명령을 거슬러 
자기 맘대로 할 수 없다고 망설이나 바르톨로메의 총명함과 배움에 대한 열정에 탄복하여 다소 무리를 하면서도 바르톨로메에게 
글을 가르친다.

그러던 어느 날, 바르톨로메의 형은 제빵사의 도제로 길을 떠나게 되고 바르톨로메를 수사님께 보내줄 길을 누나 혼자 모색하다가 
길에서 우연히 사고로 바르톨로메는 마르가리타 공주의 눈에 띄고 만다. 그 마차를 바로 아빠가 몰고 있다. 그 아빠는 바르톨로메를 
모른 척한다. 마르가리타 공주는 바르톨로메의 흉한 기형을 보고 자신의 ‘인간 개’로 삼겠다고 궁정으로 데리고 오라고 한다. 그렇게 
궁정으로 들어가게 된 바르톨로메는 살기 위해 굴욕적이지만, 개 흉내를 내며 지낸다. 버르장머리 없는 마르가리타 공주의 변덕과 
다른 난쟁이 시동들의 심술로 바르톨로메는 괴로운 시간을 보낸다. 개의 얼굴로 분장을 위해 궁중의 화실로 찾아가는데 화실의 
화공들은 바르톨로메에 대한 동정심을 가지고 있다. 바르톨로메도 그곳에서 조금이나마 안식하는데 화공들의 작업을 보고 조색
(색 배합)하는 데 관심을 보이자 화공들은 그에게 한번 시켜본다. 놀랄 만한 재능을 보이는 그를 보고 화실의 스승들도 관심을 보이고
그들은 힘을 합하여 ‘인간 개’ 신세에서 벗어나게 해 줄 방법을 모색한다.

그리고, 무정하기만 했던 그의 아버지도 짐승보다 못한 취급을 받는 아들의 모습을 보고 자신의 모습을 반성하고 회개하며 어떻게든
아들을 구하고자 한다. 궁정 화공들이 찾는 술집에서 화공들이 바르톨로메에 관해 얘기하는 것을 발견하고 깜짝 놀란다. 이들은
지혜를 모아 그를 구하고 궁정의 정식 화공은 아니더라도 총명한 그에게 그림을 가르쳐 줄 방법을 찾는다.

*

종교적 의무보다 우위의 인간애

엄마와 바르톨로메에게 글을 가르쳤던 수사의 모습에서 종교적 질서와 의무보다 인간 내면에 존재하는 인간애가 우월하다는 것을 
볼 수 있다. 엄마는 흉한 외형의 장애인 아들이 너무나 안타깝다. 그러나 당시의 종교적 질서와 남편에 대한 순종으로 아들을 
적극적으로 돕지는 못하지만, 아들에게 기회가 왔을 때 마음 깊은 곳의 소리를 무시하지 않고 따른다. 수사 역시 수도원의 질서가 
있지만, 그것을 초월하여 바르톨로메에게 정성을 다하여 글을 가르친다. 나 역시 20년 넘게 종교인이기에 종교의 본질 자체는 
사람을 위한 것이라고 생각하지만, 사람이 만든 종교의 규범과 질서는 인간에게 굴레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것을 뛰어넘고자 
했던 것이 종교개혁, 르네상스였던 것 같다. 이 책에서 같은 정신을 볼 수 있었다.

장애인에 대한 인식

17세기 당시의 장애인에 대한 인식이 너무나도 마음이 아프고 안타까워서 책장을 넘길 때마다 따끔따끔했다. ‘인간 개’라니 정말 소름 
끼치는 발상이다. 있을 법한 이야기이므로 작가가 그렇게 상상력을 발휘했을 터인데 정말 읽기가 괴로웠다. 실제로 프릭 쇼
(Freak Show)라는 신체 기형을 가진 사람들이 나오는 서커스 같은 것이 있었다. 신의 저주를 받았다는 잘못된 인식으로 인하여 
장애인의 인권을 존중하지 않았던 것 같다. 읽으면서 한 가지 마음에 걸렸던 것이 ‘바르톨로메가 총명하지 않고, 그림에 재능도 없고, 
평범하거나 혹은 게으르고 성격도 별로인 장애인이었다면?’이라는 물음표가 떠나지 않은 것이었다. 바르톨로메가 총명하고 선량하고 
재능이 있다는 설정 자체가 나쁘다고 생각하지는 않지만, 문화/예술 작품에서 장애인은 뭔가 그런 특출한 점이 있어야 존재가치가 
있는 것처럼 그려지는 면이 없지 않아 있는 것 같다. 물론, 장애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것을 극복하여 인간 승리를 이루는 것이 
그만큼 감동을 주고 극적인 요소가 있으므로 그런 것이겠지만, 비장애인이 십인십색인 것처럼 장애인도 십인십색이다. 악하고 
미련하더라도 인간이기에 인권이 있는 것이라는 점을 지적하고 싶었다.

내가 변화를 이룰 능력이 없으면 누군가 이루기를 믿어라!

“어느 현자가 이렇게 말했습니다. 무언가를 바꿀 힘이 네 손에 없거든, 다른 누군가가 그렇게 할 것이라 믿어라! 저는 운명도 언젠가는 
바르톨로메의 편에 서리라 믿습니다.” (274쪽)

혼자서는 이루지 못해도 이 책에 등장하는 작은 한 사람 한 사람의 도움이 고리로 연결되었다. 형과 누나, 엄마가 바르톨로메를 
드럼통에 숨겨 집 밖으로 끌어냈고, 수사님이 바르톨로메를 가르쳤다. 그리고 궁중 화실의 화공들이 바르톨로메를 알아보고 그대로 
두지 않고 힘을 합쳐 그를 건져냈다. 내가 엄청나게 거창한 것을 해낼 필요가 없다. 작은 고리 하나가 되면 될 것이고, 그것도 할 
능력이 없다면 누군가가 그렇게 할 것이라고 믿고 바라야겠다.

우리 청소년들이 꼭 한번 읽어보고 생각해 보았으면 하는 생각이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