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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9회 글나라백일장대회 일반부 우수상 '페인트'
제 90호 소식지
'페인트'를 읽고

                                                                                                               일반부 정**

아이의 책상위에 놓여있는 이 책을 보고 슬그머니 책장을 넘기게 된 것은 아이의 관심사를 엿보고 싶었기 때문이었다. 
그도 그럴 것이 요즘 들어 부쩍 말수가 적어진 아이를 볼 때마다 은근한 걱정으로 자연스럽게 마주할 방법을 찾고 있었던 
것이다. 어쩌면 이 책을 통해 찾을 수 있으리라는 기대감으로.

‘누군가를 알아간다는 건 그만큼의 시간과 노력을 투자하는 일로 어쩌면 부모와 자녀사이에 가장 필요한 것인지도 모른다.’

책속에서 알게 된 이 말이 처음에는 낯설기만 했는데 책을 다 읽고 나서는 든든함으로 가슴 속에 자리 잡고 있었다.

이 이야기의 배경은 국가에서 설립한 NC센터로 출산을 장려하기 위한 정책의 하나인 부모가 낳은 아이를 키우기 원치 않을 때 
정부에서 대신 키워주는 곳이다. 그리고 그곳에서 생활하는 아이들은 국가의 아이들로 불리며 최상의 조건에서 가디들의 돌봄 
아래 완벽함을 갖추며 자란다. 이름은 센터에 들어오는 계절에 따라 주어지고, 열세 살부터 부모와의 면접을 시작할 수 있고 
열아홉 살이면 센터에서 나가야 한다. 만약 그 때까지 부모를 찾지 못한 채 사회에 나가면 NC센터 출신이라는 것만으로 보이지 
않는 차별로 적응하기 쉽지 않다.

미래의 모습이라고 하지만 마음이 무거워진다. 지금도 출산율이 점점 줄어들어 심각한 사회문제로 자리 잡고 있는데 어쩌면 
그리 멀지 않은 모습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으로. 물론 지금도 보육시설에서 생활하는 아이들이 있지만 전적으로 정부에서 
아이들을 키우는 것과는 많이 다르다. 반면 입양되지 못한 채 사회로 나왔을 때 보이지 않은 차별은 변하지 않는 우리의 
개인주의적인 이기심에 부끄러워진다.

제누301. 이야기의 주인공으로 NC센터에서 자랐으며 열일곱 살로 가치관이 뚜렷하고 생각도 깊어 나이에 비해 성숙한 모습을 
보여준다. 이 책의 제목인 페인트는 부모면접(Parent’s interview)를 뜻하는데 아이들끼리 통하는 말이다. 제누는 열세 살부터 
지금까지 4번의 페인트를 치렀으며 NC센터에서 머물 수 있는 기간이 2년 남짓으로 가디들은 마음이 바쁜데 정작 제누는 크게 
마음 쓰지 않는다.

프레젠트 인터뷰, 프리포스터, 가디 등 낯선 단어들이 점점 익숙해지는 것을 보니 아이의 마음에 가까워질 수 있으리라는 생각이 
들었다. 국가의 아이들로 부족한 부분 없이 자라지만 결국 가족의 일원이 되기 위해 입양을 원하는 부모들의 면접을 보고 
결정하는 과정은 아이들을 중심으로 하고 있어 다행이라는 생각도 들었다. 하지만 제누는 부모면접을 통해 대부분 아이보다는 
입양으로 인한 혜택을 우선으로 하는 모습에 더 이상의 기대감을 갖지 않게 되었다. 그런 제누에게 찾아온 젊은 예술가 부부는 
솔직함과 자연스러움으로 닫혀있던 제누의 마음을 열게 한다. 그림을 그리는 이해오름과 글을 쓰는 서하나는 보통의 
일상차림으로 질문에 대한 답도 두서없이 생각나는 대로 말하는, 그러면서도 서로의 말에 툭탁이는 모습에 나 역시 고개를 
끄덕일 수 있었다.

필요한 서류를 준비하면서 자신이 엄마를 면접 보면 어떤 기분일지에 대한 생각이 들었다는 하나의 말에 가슴이 쿵 내려앉았다. 
만약 아이가 나를 면접한다면? 아이는 나에게 무엇을 바랄까? 아이의 마음속에 나는 몇 점의 점수로 자리 잡고 있을까?

지금까지 아이는 별 탈 없이 잘 자라고 있다. 어려서부터 공부에 욕심이 많고 잘 해서 모범생에 우등생으로 든든함을 주었는데 
그 모든 게 내 욕심으로 아이를 틀 속에 가둔 것은 아닌지 되돌아보게 된다. 거기에 하나부터 열까지 아이에게 관여하는 모든 
것들이 사랑이라는 명분으로 일관해왔으니.

또 한 가지, 경제적으로 힘들어도 아이를 위해서는 무엇이든 해줄 수 있는. 지금까지 그렇게 해왔던 것에 아빠로서 마음을 
다져왔다. 반면 아이는 이제 스스로 해나가고 싶을지도 모른다. 무조건적인 희생도 짐으로 버거웠을지도 모른다. 
그래서 그동안 드러내지 못한 채 꾹꾹 밀어 넣었을 아이를 생각하니 마음이 아릿해진다. 진정으로 아이를 위한 일이 무엇인지 
곰곰이 생각해본다.

제누는 하나, 해오름부부와 3차 페인트까지 하고 나서 마지막 과정인 합숙을 하지 않음으로써 입양을 거부한다. 
즉 하나와 해오름을 부모로 받아들이지 않은 것이다. 아직 NC센터에서 더 머물고 싶다는 이유로, 그런데도 마음이 따뜻해진다. 
해오름이 그려준 제누의 얼굴이 그려진 액자 선물에서 전해져오는 훈훈함으로. 그 그림 뒤에 남모르게 적어준 전화번호와 
집주소가 주는 즐거움으로. 단 둘이 산책하고 안아준 하나의 포근함으로.

아마도 제누는 NC센터에서 나오면 하나와 해오름 부부를 찾을 것이다. 때로는 친구로, 한 번쯤은 자식으로 그들과 함께 하며 
또 다른 관계를 맺어 든든함으로 함께 할 것이다.

솔직히 말하면 지금까지 나는 아이에 대해 누구보다 잘 알고 있다고 여겼다. 그런데 요즘 들어서는 아이의 입을 통해서가 아니면 
도통 속내를 알 수 없다는 사실에 맥이 풀린다. 이 또한 내가 알고 싶은 것들만 알고 있는, 정작 가장 중요한 이해와는 거리가 먼 
사랑을 하고 있는 것이다. 머릿속으로는 아이도 당당한 인격체라는 것을 알고 있으면서도 현실에서는 전혀 다른 행동이었으니. 
얼굴이 홧홧해진다.

제누와 한 방에서 생활하며 처음으로 시작한 페인트에서 자상하고 인자한 노부부를 만나 그들이 가족이 되려는 아키, 예전에 
부모에게 입양되었다가 센터로 되돌아와 다시 부모를 기다리는 노아를 비롯한 NC센터의 아이들은 모두 우리의 아이들인 것이다. 
그리고 그 아이들에게 행복한 가족의 일원이 될 수 있도록 노력하는 센터장박과 최. 어쩌면 아이들은 세상에서 가장 큰 사랑을 
받고 있는지도 모른다. NC센터에서 센터장과 최로부터.

제누가 NC센터를 나가 NC센터출신에 대한 차별을 없애기 위해 노력하는 모습을 생각하니 마음이 든든해진다. 아직 다가오지 
않는 내일에 대한 걱정으로 움츠리기 보다는 오히려 당당하게 대할 수 있어야 한다. 다양한 경험을 통해 그 속에서 또 다른 
자신을 발견할 수 있으리라 생각하는 제누처럼 아이도 자신의 의지와 생각을 키워갈 수 있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다른 무엇보다 아이를 믿고 기다리기로 한다. 시간이 좀 걸려도 답답해도 멀찌감치 서서 지켜보기로 한다.

아이가 나에게 마음을 열 때까지 아이에게로만 향했던 시선을 나에게로 돌려 마음을 들여다봐야겠다. 그리고 마주한다. 
잿빛으로 내려앉은 것들을. 내가 얻어내지 못한 것을 아이를 통해 얻으려 하는 그릇된 욕심을, 세상살이 경험이 많다는 생각으로 
어줍잖은 잣대를 들이대는 부끄러운 손길을, 사랑한다는 말을 입에 달고 살면서 아이를 꽁꽁 옭아매는 서슬퍼런 말들을.

이제야 한 꺼풀씩 걷어내며 밝은 빛으로 바꿔가기로 다짐해본다. 진심으로 바란다. 제누가 바깥세상으로 내딛는 발걸음이 
당당하기를. 그 걸음을 아이도 함께 걸을 수 있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