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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나라 쓰기마당 우수작 '전염의 시대를 생각한다 / 파올로 조르다노'
제 86호 소식지

전염의 시대를 생각한다 / 파올로 조르다노

                                                                                              노*희

 

이 책을 읽고, 국적이나 피부색이 달라도 감염병이 휘두르는 힘에 반응하는 건 똑같다고 생각했다. 저자는 이탈리아 소설가인데, 그가 적어간 코로나 진행 중의 일상이 우리가 겪는 오늘과 다르지 않아서 놀랐다. 아니, 이건 놀랄 일이 아니라 그냥 당연했던 건데 나는 무슨 근거로 다를 거로 생각했는지 모르겠다.


 

그 누구도 고립되기를 원치 않는다. 세상과의 단절이 일시적이라는 것을 알지만, 그렇다고 그저 참아내기에는 여간 고통스러운 게 아니다. 우리는 절실하게 다른 사람들과 함께, 그 사이에 있고 싶다. 소중한 사람들과 2미터 이상의 사회적 거리를 두고 싶지 않다. 그것은 숨을 쉬는 것만큼이나 중요한 욕구이다. (33페이지)


 

이게 무슨 일인가 싶어서 놀랄 시간도 없었다. 코로나 19는 어느 날 갑자기 우리 일상에 침투했고, 우리는 속수무책으로 그 감염병에 노출되어 있었다. 어떻게 해야 하는지, 이게 어떤 병인지도 자세히 알지 못한 채로 두려움에 떨었다. 그러다가 하나씩 코로나 19에 접근하기 시작했다. 어디서 시작된 병인지 알아내려고 했고, 어떤 방어로 우리가 이 위험에 대응할 수 있는지 찾아내고 배워나갔다. 개인위생의 철저함을 강조했고, 서로 거리 두기를 일상화했다. 마주 보며 밥을 먹던 일상은 이제 잊어야 한다. 같이 모여 찬송가를 부르는 일도 삼가야 했다. 안부를 물으며 화기애애하게 술 한 잔 나누는 일도 어려워졌다. 아이들은 학교에 갈 때도 마스크로 무장을 한다. 초등학교 조카아이는 일주일에 한 번 학교를 가는데, 그마저도 힘들다고 가정학습으로 대체하곤 한다. 어차피 녹화된 동영상 수업이라 크게 다를 바 없겠지만, 그래도 지금 반년 가까이 가정 학습을 하는 초등학교 수업을 상상이나 했겠는가. 어느 방향에서 어떤 분야를 봐도, 코로나 19가 우리 생활방식을 완전히 바꿔놓은 건 사실이다.


 

비단 우리만 겪는 일이 아니며, 우리가 공동체로 살아가고 있음을 그대로 들려주는 저자의 음성이었다. 저자가 하나씩 적어낸 어느 날의 일상과 생각들이 우리의 오늘과 똑같다. 삶을 멈출 수는 없으므로 계속되는 일상의 모습이 변했다. 출근하지 않은 재택근무가 되었다. 특히 코로나 19 확진자가 갑자기 늘고 사망자 역시 예상할 수 없는 수치로 늘어난 이탈리아는 외출 제한을 철저하게 했다. 저자의 말에 따르면, 마트에 장을 보러 가는 것도 각 가정에서 허락된 사람만이 가능했다고 한다. 무엇이든 국가의 통제에 따라야 하는 상황이 된 거다. 그게 꼭 답답하기만 한 건 아닐 테다. 누구에게나 찾아올 수 있는 감염의 상황을 방지하자는 게 이 상황에 대응할 수 있는 우리 모두의 의무일 테니까 말이다. 하지만 하나둘 통제가 늘어나고 계속 이어질 때, 공동체를 따라야 한다는 걸 알면서도 우리 마음은 불편해진다. 갇힌 일상에 화가 나고, 개인의 자유를 외치고 싶어진다. 그래도 우리는 지켜야만 했다. 이 위기를 같이 통과해야만 했다. 전염의 시대에 우리 인간은 절대 혼자인 섬이 될 수 없으며, 개개인이 방역선을 지키는 게 전염의 상황을 종결시키는 유일한 대응책이라는 거다. 근데, 정말 코로나19가 끝나기는 할까? 이런 걱정을 하는 게 나만은 아니겠지?


 

우리의 행동 하나하나가 뚜렷한 결과로 나타난다는 것은 코로나 19가 시작된 지 거의 반년이 지난 지금 확실히 알게 됐다. 사회적 거리 두기를 실천했을 때, 마스크 착용으로 감염 위험을 방어했을 때, 일상의 많은 부분을 비대면으로 소화했을 때 감염자는 줄어들었다. 그런데도 이 상황이 끝난 건 아니다. 끝날 수 있는지조차 알 수 없어서 더 무섭다. 지금까지 코로나 19가 보여준 것은 우리가 어디에 있어도 다층적으로 연결되어 있다는 거다. 저자는 우리가 사회적으로 개인적으로 모든 관계가 연결되어 있고, 그렇게 세상은 하나의 큰 고리로 연결되어 있으며, 그건 곧 전염의 고리로 연결되어 있다는 것과 같다고 말한다. 비행기나 버스, 기차 같이 여러 명이 이용할 수 있는 대중교통 수단은 빠르고 효율적으로 운행되지만, 지금은 이런 수단이 바이러스의 수송망이 되었고, 현대 사회가 이룬 압도적 성취는 도리어 형벌이 되었다고. 그 형벌로 우리는 보편의 고독을 불러오는 전염의 시대를 살아간다. 방호복 안의 의료진, 집중치료실의 환자, 마스크를 쓰고 다니는 사람들, 공포를 부르는 거짓 뉴스들, 사람들이 사라진 거리의 문 닫은 상점들, 누구나 감염을 퍼트릴 수 있다는 의심의 눈빛들, 집에 머무는 시간이 길어지는 상황까지. 자유와 고립을 동시에 경험하는 순간이다.


 

이 고통의 시간을 어떻게 벗어날 수 있을까. 저자는 이 답을 R0(기초감염재생산수) 값에서 찾는다. R0는 한 명의 감염자가 몇 사람을 전염시킬 수 있는지를 수치화한 것이다. R0 값이 1을 넘어간다는 건 감염자 수가 증가한다는 것이고, 우리는 이 값을 1 미만으로 내려야 한다. 그러려면 우리는 공동 운명체라는 사실을 상기하면서 연대 의식을 가져야 한다는 것. 다른 사람을 의식하고 배려하면서 살아가야 하지만 무엇보다 내가 조심하고 방어하는 일이 먼저라는 거다. 저자는 이 고통의 시간에서 의미를 재발견하고 가치를 부여해야 한다고도 말한다. 자의로든 타의로든 겪게 된 고립의 시간에 우리는 생각할 기회를 얻었으며, 가려져 있던 진실과 인생의 우선순위를 돌아보게 한다. 현재 우리 삶의 다른 모습을 찾게 한다. 그러면서도 이 역시 금방 잊게 될지도 모를 현실을 경고한다. 이 위기가 수그러들고 모든 일이 수습되면, 이렇게 깨달은 여러 가지 역시 증발해버리고 말 테니까.


 

감염 가능자에게 정보가 전달되면(수치, 장소, 입원 상황 등), 상황에 맞게 더 잘 행동할 것이다. 물론 모두가 다 그런 것은 아니다. 예상외의 태도를 보이는 사람도 있을 수 있다. 하지만 대부분은 합리적 추론을 할 수 있는 이성을 갖추고 있다. 지금 진행 중인 시뮬레이션들은 모두 전염병 확산을 저지하는 요소로서 우리의 의식을 고려하고 있다. (70페이지)


 

코로나 19를 응시하는 저자의 말 중에 우리나라를 떠올리게 하는 부분이 있었는데, 전염의 시대에 투명한 정보는 절차나 권리의 문제가 아니라 필수적인 예방 의학이라는 거다. 사람들의 공포는 숫자에서 나오는 게 아니라 불신의 고리에서 나온다고. 몇 명의 확진자가 더 생겼느냐 하는 문제가 아니라, 몇 명이 더 확진되었는지 그 사실 자체를 숨기는 거에 공포가 생긴다. 무엇을 더 감추고 있는지 몰라서, 아는 게 없으니 어떻게 대처해야 할지 몰라서, 이대로 할 수 있는 게 없다는 생각에 좌절과 고통은 커진다. 매일 같은 시간에 브리핑하면서 전날 감염된 사람의 수를 말하고, 지금 어떻게 대처하고 있으며, 우리 개개인이 어떤 태도를 취해야 하는지 설명하는 뉴스를 떠올려봤다. 이런 투명한 정보를 제공함으로써 우리는 더 조심하고 개인이 취해야 할 방어를 고수한다. 이렇게 코로나 19를 함께 겪어가고 있는 국민이나 정부의 연대 의식이 확인된다.


 

지금 누구나 바란다. 일상으로 돌아가고 싶다고. 하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코로나 19 이전의 일상으로 완전하게 돌아갈 수는 없을 듯하다. 미세먼지가 많다고 해도 잘 쓰지 않던 마스크를 이제는 필수품으로 착용하고 다닌다. 휴대용 손 소독제를 가방에 넣어서 다니고, 어디를 가더라도 입장할 때 신분을 밝히고 기록한다. 당연하게 즐기던 문화생활은 내 맘대로 다닐 수 없게 됐다. 도서관은 이제 겨우 문을 열었고 착석하지 않은 채로 도서 대출만 가능해졌다. 평범하다고 부르던 일상이 얼마나 귀한 시간이었는지 새삼 깨닫게 된다. 저자는 이런 전염의 시대에 우리가 다시 전염에 묶이지 않고(혹은 묶이더라도 반복하지 않으려면) 살아가려면 우리 각자가, 모두가 함께 고민해야 한다고 말한다. 생각하고 또 생각하는, 생각하는 용기를 갖지 않는다면 아무것도 되돌릴 수 없다고, 지금 여기서 한 발자국도 나아갈 수 없다고 경고한다. 비단 저자의 경고 때문이 아니더라도, 거의 반년동안 바뀐 우리 일상을 떠올려보면 바로 알 수 있다. 인류에게 침투한 이 치명적인 바이러스가 우리 삶을 어떻게 얼마나 바꾸어놓았는지를. 그래서 쉽게 잊히면 안 되는 기억이고 시간이다. 나도 모르게 오늘을 잊고 방심한 채로 살아가다가도 문득 한 번씩 2020년의 봄과 여름을 어떻게 고통스럽고 힘들게 보냈는지 떠올려봤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