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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6회 글나라 독서감상문대회 : 인생의 확률에 대하여 - 은희경의 <중국식 룰렛>을 읽고
제 54호 소식지

인생의 확률에 대하여. - 은희경의 <중국식 룰렛>을 읽고

일반부 최우수상 이현성


어렸을 적, 이가 갈리도록 싫은 게 있었다. 허영과 기대. 이 두 가지가 합쳐지면 사람은 바보가 되는 것 같았다. 젊은 나이에 남매를 홀로 키우며 집안을 건사하기란 어려운 일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 어려운 일을 딛고 일어서 몇십년 간 파출부로 일하며 아이들을 장성시킨 이야기 등이 휴먼 다큐에 나올 때면 기분이 이루 말할 수 없이 참담했다. 어머니는 귀가 얇았다. 지인들에게 돈을 잘 빌려주고는 곧잘 떼이기도 했으며, 감언이설에 속아 투자금 조로 돈을 날린 적도 있다. 어린 우리를 데리고 돈을 받겠다고 돈 떼 먹은 사람은 없고 그 식구가 있는 집으로 가서 어른들끼리 시시비비를 가리는 자리에 모로 누워 잔 적도 있다. 그래서 나는 지금도 도박을 너무너무 싫어한다. 한 순간의 요행에 기대어 조금씩 모아 온 돈을 순식간에 잃는 것은 이해도 되지 않을뿐더러, 아무 소득 없이 재미로 몇 푼 잃는 것도 싫다.

 

그런데, 웃기게도 인생길을 절반 쯤 돌아 턴을 해보니 이제야 인생이 ‘중국식 룰렛’ 같은 도박이라는 생각이 든다. 이따금 내가 원하든 원하지 않든 신의 뜻대로 흘러가는 일들도 있는 것이다. 은희경의 <중국식 룰렛>은 그런 내 인생의 전환점에 신호탄 역할을 했다. 어두운 유년 시절의 한 귀퉁이를 자리 잡고 있는 어머니의 한탕에 대한 기대와 허영이 미치도록 증오스러웠다. 날카로운 그 마음의 자락을 슬슬 뭉개며 무뎌지게 해 준 책이다. 모두가 죽음을 향해 가고 있는 것만 같은 단편들 속에서 그들이 놓고 가는 마음들을 엿볼 수 있었다.

 

처음엔 무척 우울한 소설이라고 생각했다. 어두운 밤, 이상한 규칙이 있는 바에 모여 수상한 남자 넷이 모여 중국식 룰렛을 돌리는 것처럼 자기들만의 게임을 즐긴다. 주인 남자는 한때는 유복한 가정에서 호화롭게 살았지만 집안이 기울면서 고급진 취향만 남은 이다. 시한부 인생을 선고받아 물질적으로든, 육체적으로든 어찌 보면 넷 중 아무것도 남지 않은 이라고 할 수 있다. 초대받은 손님 ‘나’는 그런 주인 남자와 한때는 연정의 관계에 있었던 듯싶다. 하지만 지금 ‘나’는 사랑하는 아내에게 버림받고 사회적 위치로 추락하여 아슬아슬한 경계선에 놓여 있어 옛 정으로라도 주인 남자의 장단에 놀아나고 싶은 생각이 추호도 없다. 나머지 두 남자는 허세만 깃든 홍보회사 인턴 청년과 첫사랑 여인과의 로또 같은 하룻밤을 실패한 검은 뿔테 안경의 중년 남자다. 주인 남자와 그의 친구를 제외하고는 전혀 접점이 없을 것 같은 사람들이 모인 것이다.

 

규칙은 간단하다. 서로가 서로에게 질문을 하고, 답을 하며 빠르게 술잔을 비워간다. 대답을 할 수 없으면 술을 마실 수 없다. 여기선 술을 마실 수 없는 게 벌칙이다! 그야말로 최고의 술로만 나오기 때문이다. 어쩌면 세계에 몇 개 없는, 국내엔 손꼽힌다는 맥캘란 55년산이 그 속에 끼여있을 수 있다. 신의 행운이 자신과 함께 하길 바라며 이들은 솔직하게, 때론 교묘히 비껴나가며 답을 한다. 이들의 정직성은 1~9점에서 5점. 이들은 정직하지도, 그렇다고 솔직하지도 못하다. 그야말로 모든 것은 운이다.

 

아니다. 어쩌면 그것은 운이 아니라 이래도 좋고, 저래도 좋은 오늘의 이 순간을 즐기는 그들의 치밀한 두뇌 싸움이었을까. 그들은 다시 뿔뿔히 흩어진다. 아마 앞으로 인생을 살아가는 그 어느 순간에도 마주칠 일이 없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들의 뇌리에 천사의 몫으로 날아간 위스키 향은 강렬히 남아있으리라. 어머니에게 투자는 그런 것이었을까. 그 날 그들이 했던 약속을 그대로 믿는 게 어제의 고단함을 날리는 지푸라기였을 수도 있겠다 하는 생각이 처음 들었다. 다른 사람의 인생을 용서하거나 단죄하거나 하는 생각은 없다. 그냥 그 인생을 이해하는 정도로 내 마음의 불을 그만 끄고 싶다.

 

<중국식 룰렛>의 이후 단편들도 비슷한 느낌으로 전개된다. <장미의 왕자>는 현실과 환상이 어우러져 무엇이 진짜고 무엇이 가짜인지 혼란스럽게 한다. ‘나’는 그 모든 혼란을 뒤로 하고 원룸 방에서 탈출하고자 한다. <대용품>에서는 노력으로 똑똑한 척 했던 큰 소년과 정말 똑똑했던 작은 소년의 뒤바뀐 운명에 대해서 이야기한다. 서울로 영재 테스트를 받으러 가던 날 일어난 버스 사고로 작은 소년은 죽고, 멀미를 해 맨발로 있던 큰 소년의 발엔 작은 소년의 신발이 신겨져 있다. 마을의 기대를 한껏 받던 두 소년 중 하나가 사라지면서 남아 있는 큰 소년은 끊임없이 자신이 대용품 같다는 슬픈 망상에 시달려야 했다. 아! 또한 <정화된 밤>은 또 어떠한가. 성가대에서 젊은 날의 아린 추억을 함께 한 요셉과 가브리엘, 젬마는 서로 다른 추억을 가지고 살아가고 있다. 분명 한 시절을 함께 보냈는데 그 시절에 대한 단상과 기억과 감정은 서로 어찌나 다른지. 화해되지 못한 마음은 허공에 흐드러지고, 결국 아들세대에서 문제의 해답이 나온다. 정화된 밤? 그래서......“더 좋아진다는 뜻이겠지?”

 

주인공들은 하나 같이 누군가 아프거나 죽거나, 죽음을 향해 가고 있거나 상처를 끌어안고 살고 있다. 하지만 생각해보면 오늘을 사는 어느 누군들 그렇지 않겠는가. 우리는 모두 상처받았거나 아프거나 언젠가 죽거나 오늘 하루를 기점으로 죽음을 향해 가고 있다. 그 모든 사람들에게 이야기하고 싶다. 괜찮다, 괜찮아. 내일은 ‘더 좋아질거야’라고. 물리적인 문제나 해결되거나 심리적인 문제가 없어지거나 하진 않을 것이다. 하지만 조금쯤 괜찮아질 순 있겠다. 마음을 놓아라. 인생의 2퍼센트는 위스키를 훔쳐 먹은 천사들의 몫이니. 깊은 밤 어머니께 안부 전화 한통을 드리고 나서 오랜만에 편하게 잠을 잤다. 고된 인생, 내일은 또 좀 더 괜찮을 거라는 마음이 든다. 그들이 내게 그렇게 말해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