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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정, 그리고 용기
제 58호 소식지

인정, 그리고 용기

 

  인정하다. 이 속에는 얼마나 많은 뜻이 내포되어 있는가. 단지 ‘확실히 그렇다고 여기다’라는 사전적 의미와는 또 다른 의미가 숨겨져 있다고 확신한다. 나에게 인정이라는 단어는 억울함과 용기라는 상징으로 다가온다. 우선, 내가 인정과 억울함을 연관 지어 생각하는 이유는 이러하다. 확실히 기억나지는 않지만, 이제 막 세상을 내 발과 내 손으로 만지며 뛰어놀던 시절, 아무것도 몰랐던 시절의 일이었던 것 같다. 유치원 때 나는 한 어른의 안하무인한 태도에 실망한 적이 있다. 그때 무슨 일이 있었는지, 그 어른이 누구였는지는 아이러니하지만 생각나지 않는다. 그 어른이 나에게 실수를 했고, 그건 6~7살 밖에 되지 않은 내가 보기에도 그 사람이 잘못을 한 것이 맞았다. 하지만 그 사람은 잘못을 했다고 사과하기는커녕, 오히려 잘못한 사람은 나라고 꼬집어 말했다. 분명 그 어른이 잘못한 것이 맞는데도 말이다. 잘못을 해놓고 단지 나보다 나이가 많다는 이유로 잘못이 없다고 우기는 태도가 어찌나 얄밉던지, 이제 서른이 다 되어가는 지금까지 그 사건이 생생히 머릿속에 남아있다. 그때의 나는 정말 억울했었고, 그래서 나는 어른이 되면 내 잘못은 인정할 줄 아는 어른다운 어른이 되어야지 라고 다짐했다.

 

 

  정신적으로 성숙한 어른은 아니지만, 육체적으로는 이미 성인이 된 지금 나는 가끔 그 꼬맹이 때 했던 다짐대로 살아가고 있는지 되돌아보곤 한다. 혹시 나도 그런 안하무인한 사람은 아닐까, 누군가를 기분 나쁘게, 억울하게 만들고 있는 건 아닐까 하고 말이다. 생각해보면 부끄럽지만 나 역시도 인정하지 않고 내 말이, 행동이 옳다고 주장한 적이 있다. 과거의 사건을 반추하며 나의 행동을 인정한 적도 있었지만, 실수해놓고 혼나지 않기 위해, 내 체면을 깎아먹지 않기 위해 인정하지 않는 경우도 있었다. 완벽한 인간은 어디 있겠어, 앞으로 잘하면 되는 것 아니겠어! 라고 내 자신을 위로해보았지만, 그때마다 슬그머니 붉어지는 얼굴을 감출 길이 없었다. 인정이라는 일은 생각보다 쉬운 일이 아니었다. 갈림길에서 소신과 일신의 편안함 중 어떤 것을 추구할지 선택해야 될 때면, 고민이 되는 건 어쩔 수 없었다. 내가 잘못했다 말하는 것에는 상당한 용기가 필요했다. 인정에도 용기가 필요한 것이다.

 

 

 

 

 

 

  우리 사회에서도, 우리나라도 인정할 수 있는 용기가 필요하지 않을까. 나는 아무 잘못 없고 당신만 잘못했으니 나에게 사과하시오 라고 우기기보다는 잘못한 일이 있으면 잘못했다, 미안하다고 사과하는 용기가 필요하다. 지위고하를 막론하고 인정할 건 인정해야 한다. 우리에겐 아픈 과거사가 있다. 피해자로서 아픈 과거사도 있지만, 가해자로서 우리가 받은 상처만큼의 아픔을 다른 사람들에게 준 과거사도 있다. 우리는 피해자로서의 과거사에는 통탄을 금치 못하지만, 우리가 가해자였을 때 저질렀던 일에는 큰 반응을 하지 않는 경우가 많다. 우리에게도 용기가 필요한 것이다. 부끄럽지만, 치부를 드러내는 것 같아 마음이 영 내키지 않지만 그래도 용기를 내야한다. 그리고 인정해야 한다. 과거를 인정해야만 우리도 당당하게 우리의 조건을 요구할 수 있다. 제 처신조차 제대로 하지 못하면서 다른 사람에게만 떳떳하길 요구할 수는 없다. 부끄럽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스스로를 인정하는 용기가 우리 모두에게 필요하다.

 

독서지도사 강희진